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궁 (문단 편집) == 대중매체에서의 후궁 == 매체에서는 주로 [[역사물]], [[판타지물]]([[동양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 [[로맨스 무협]], [[할리퀸]]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캐]] 유형이다. 특히 [[궁중 로맨스]], [[궁중암투물]] 및 왕실 궁중물의 [[필수요소]]. 이런 장르에서는 왕의 총애 혹은 집안의 권세를 믿고 왕비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왕과 왕비를 이간질하려하는 후궁이 꼭 한명 이상 등장하지만, 사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왕비는 왕의 정실이자 국모로서 그 국가 내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여성이며 궁궐과 궁궐내의 여인들을 총관리할 수 있는 직책과 권세를 누릴 수 있었고, 왕비와 직접 맞대면이 가능한 신분은 오로지 왕, 선왕, 선왕의 왕비들, 왕들의 적손들뿐이었다. 왕도 왕비에게는 함부러 할 수 없는 판국에 위계질서에 따른 상하관계가 확실한 신분제 사회에서 왕비보다 서열이 훨씬 낮은 후궁이 왕비의 면전앞에서 왕비를 망신주고 왕에게 왕비를 험담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설령 왕이 후궁을 굉장히 총애한다고 할지라도, 왕비보다 후궁을 더 우선시하면 국가안팤로부터 여색에 미쳐 왕실의 기강을 무너뜨린 암군이라는 비판을 받고 신하들로 제지를 받았기 때문에 왕이 후궁에게 왕비보다도 더한 권세를 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례로 효종의 후궁인 안빈 이씨는 본인의 친딸인 숙녕옹주에게 실수로 '너' 한번 했다가 사형당할 뻔한 반면, 숙종의 왕비였던 인현왕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후궁인 희빈 장씨를 매질해도 비난받지 않았고 오히려 사관에게 왕실의 기강을 잡았다는 칭찬을 받았다. 후궁은 왕비보다 화려하게 입을 수도 없었고 왕비가 시키는 일은 무르거나 거절하는 일 없이 즉각 해야했다고 한다. 경종과 숙종은 후궁인 경빈 박씨와 희빈 장씨를 굉장히 총애해 신하들로부터 미색을 경계하라는 상소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물며 왕비보다 품계는 낮아도 엄연히 왕의 부인으로 인정받기라도 했던 후궁도 이정도인데, 왕의 부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냥 사통관계 취급이었던 료얄 미스트리스는 이보다 훨씬 취급이 나빴다. 물론 중국에 경우는 이와 다르다. 중국 또한 유교 사상을 수용 하였지만 조선보다는 덜 하였고, 사실상 중국에 존재했던 통일 왕조중 한족 왕조보다 이민족의 왕조가 더 많았기에[* 수,당,남북조시대의 북위, 북제같은 경우 선비족 왕조였으며, 원나라때는 몽골족이, 청나라때는 만주족이 세운 왕조였다.], 적장자를 우선시 하였지만 서자라도 능력이 있으면 적자를 제치고 황위에 오를 수 있었으며, 후궁 또한 본인 소생의 황자가 황위에 오르면 정실인 황후와 함께 황태후로 봉해지고 사후 황후로 추존되어 황제와 합장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다만 황후 출신 태후와 후궁 출신 태후가 동시에 존재하였을땐 황후 출신 태후가 더 높은 대우를 받았다. 이에 대한 예가 [[동태후]]와 [[서태후]].]. 이 때문에 실제로도 자신 소생의 황자를 황위에 올려 태후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중국 황실에선 조선보다 더한 후궁들의 암투가 잦았으며, 실제로 황태후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중 후궁 출신이 황후 출신보다 더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