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정옹주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1520년(중종 15) 태어난 효정옹주는 그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숙원 이씨의 사인은 [[산욕열]]이었다.] 중종은 자식들에게 모두 후한 은전을 베풀었고, 이로 인하여 물자를 낭비하고 죄를 지어도 묻지 않는 등 대간들의 비판을 받았던 아버지였으니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 효정옹주는 애틋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1529년(중종 24)부터 중종은 혼기가 임박한 효정옹주의 집을 짓게 하였는데, 1532년(중종 27) 재변(災變)이 심하다는 이유를 들어 사헌부에서 집 짓는 일을 중단하자고 건의가 있었다. 중종은 장마 전에 보수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공사에 필요한 인원 일부를 남기고 철수했다.[* 중종실록 73권, 중종 27년 5월 17일 갑자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705017_001|#]]] 이때 중종이 지어준 옹주의 집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실록에 옹주의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숙원 이씨의 본가가 향교동에 있었다는 언급이 있으므로 아마도 향교동에 있었거나 가까운 근방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