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성그룹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효성그룹 큰버전.jpg]] 창업주인 만우 [[조홍제]]가 일제강점기 당시 [[호세이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1942년에 군북산업주식회사[* 조홍제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출신으로 신창리에 그의 생가가 있다.]를 설립, 정미업을 운영한 것이 시초이다. 해방 후 1948년에는 삼성상회의 [[이병철]]과 공동출자로 삼성물산공사(현 삼성물산)를 설립하여 부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제일제당 사장을 역임하면서 삼성그룹에 종사하다가 1962년 삼성그룹에서 독립, 효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현 효성그룹의 직접적인 연원은 효성물산에서 비롯한다. 이후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세우고 1968년에 울산공장을 세워 사세 신장의 기틀을 다졌다. 1970년 한일나이론을 인수하고 1973년에는 동양폴리에스터 및 동양염공을 각각 세워 섬유사업군을 구축시켰으며, 다른 한편 1963년 대전피혁, 1967년 [[한국타이어]]를 각각 인수하고 1973년 효성증권, 1975년 동원철강 및 한영공업, 1977년 대동건설, 1978년 대성목재 및 효성기계 등을 각각 인수하거나 설립했으며, 1979년에는 옛 율산그룹 계열사 율산중공과 율산알미늄을 인수했다. 1978년 조홍제 회장이 건강 악화로 인해 동양나이론을 장남 조석래, 한국타이어를 차남 조양래, 대전피혁을 막내 조욱래에게 각각 맡겨 사업 일선에서 물러났고, 1984년 조홍제 회장 사후 조석래가 가업을 이었다. 1981년 종합조정실을 신설해 그룹의 모양새를 갖추었고, 1970~1980년대까진 재계 10위권 안에 들면서 유명세를 뽐내기도 하였지만, 섬유 산업의 하향세와 IMF 위기로 40대 그룹 밖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고, 그 타개책으로 1998년에 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효성T&C 등 4개사를 '(주)효성'으로 통합하고 각 사업분야를 PG(Performance Group)로 나눴다. 효성바스프나 효성ABB 등 장기 사업플랜에 부적합한 계열사를 매각하는 한편, 특수목적 섬유 분야의 투자와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한 절치부심 등을 벌여 다시 20위권 수준까지 부상했다. [[조홍제]] 창업주는 지수초등학교 출신 재벌 3인[* 나머지 2명은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회장.] 중 1명으로, [[이병철]] 전 회장의 [[삼성물산]] 창업에 사업자금을 대고 함께 운영하였던 인물이었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장남 [[조석래]] 회장이 효성그룹을 이어받았고, 1982년 들어 차남 [[조양래]] 회장은 [[한국앤컴퍼니]]를, 막내 [[조욱래]]는 DSDL을 각각 이끌고 있다.[* 이미 조홍제 창업주는 [[송인상]] 전 재무부장관과 사돈 관계를 맺었고, 조양래 회장의 차남 조현범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3녀 [[이수연(1975)|이수연]] 씨와 부부 관계를 맺고 있다. 직계는 아니지만 효성이 MB 사돈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2016년부터 3대인 조현준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2018년에 기존의 (주)효성을 지주회사로 개편해 사업부문을 여러 자회사로 나눠 지주사 총괄체제를 구축시켰고, 2019년 8월, 한일무역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탄소섬유 공장에 1조원 투자를 발표해 협약식에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하는 등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082058481|세간의 이목을 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