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회은군 (문단 편집) === 심기원의 난에 엮이다 === 1644년(인조 22년)에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남한산성]]의 수어사 [[심기원]]이 역모를 꾸몄다. 원래는 [[인조]]를 [[태상황|상왕]]으로 물러나게 하고 [[소현세자]]를 즉위시키려 했으나,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아버지를 몰아내고 아들을 올린다는 계획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어 종친 중 한 명을 옹립시키려 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회은군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심기원의 수하였던 황헌(黃瀗), 이원로(李元老) 등이 훈련대장이었던 구인후(具仁垕)[* 인조의 외사촌형이다.]에게 밀고하여 탄로가 나버렸고 심기원은 가산을 몰수당한 뒤 [[거열형]]을 받아 말 그대로 사지가 찢겨 죽었다. 그리고 본인의 잘못이 없다해도 역적들의 수장으로 추대받았던 회은군 역시 형벌을 피하지 못했다. 회은군은 전라도 대정현(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안덕면 일대)으로 유배를 갔다가[[http://sillok.history.go.kr/id/kpa_12204024_006|#]] 그해 8월 30일[* 음력 7월 29일.]에 결국 [[사약]]을 받고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pa_12207029_001|#]] 향년 59세.[*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205025_005|《선조실록》 - 1599년(선조 32년) 5월 25일 자 기사]] 기준. 당시 나이 셈법인 [[세는나이]] 기준으로 59세이며, 만으로는 57 ~ 58세이다.(정확한 생일을 알 수 없으므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