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해도 (문단 편집) === 1차 산업 === 무엇보다도 황해도는 [[농업]]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산지가 많은 [[북한]] 지역에서 [[평안남도]] 이상 [[평야]]가 많은 곳으로, [[한반도]]에서 두번째로 큰 평야지대인 재령평야, 세번째로 큰 연백평야가 있다. [[1945년]] 당시 황해도의 경지율은 34%로 전국 최고였고, [[연백군]]에서는 무려 57.6%까지 올라갔다.[* 현대 대한민국 전국의 경지율은 평균 17%] 하지만 소우지이며 치수가 잘 되지 않는 당시의 농업 기술 특성상 연백·재령평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밭이었다. 그래도 논농사는 저런 평야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졌기에 전국노래자랑의 MC로 유명했던 [[송해]]는 “나무리뻘 '연백'(재령의 오기 추정)평야죠. 김제 만경평야를 연상하면 될 거요. 일제의 조선총독이 나무리뻘 쌀만 먹었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밥을 하면 워낙 기름져서 파리가 앉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지요.”라고 언급할 지경이었다.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9|#]] 애시당초에 황해도는 재령평야, 연백평야를 빼면 멸악산맥으로 대변되는 산악지대며, 이것은 남한에 있는 도도 비슷하다. 워낙 북한에서 농업을 망쳐놓아 생산량이 적은 것이지, 원래 나쁜 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분단 직후만 해도 38선 이남은 그래도 대한민국이 실제로 점유하던 곳이라 인천부윤이 미곡생산량을 감독하기 위해서 연백까지 시찰을 오기도 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논의 비중이 적지만, 그래도 연백·재령평야를 중심으로 [[쌀]] 생산량은 지금도 북한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다. 나머지 [[쌀]] 생산량의 대부분도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해안 일대에 걸쳐있다. [[경의선]] 라인이 아니면 쌀 재배는 거의 언감생심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제대로 된 논농사 곡창지대란 평도 있다. 또한 [[1945년]] 당시 [[팥]], 겨울[[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황해도였다.[* 1944년 밀 생산량 중 황해도가 76만 7천섬으로 전국 생산량(190만 9천섬)의 40%를 차지했다.] 또한 일교차. 연교차가 매우 크고 강수량이 적어 [[과일]] 생산에 있어서는 한반도에서 제일 적합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사과]], [[포도]], [[복숭아]]와 같은 과일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훨씬 춥고 건조한 [[만주]] 벌판이 중국에서 곡창지대이고, 기후가 유사한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 같은 곳을 감안한다면 분단이 되지 않거나 최소한 북한 당국이 농업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했으면 팥, 밀 생산 등에서는 남한보다 나았을 수도 있다. 또한 [[황해]]와 접하는 지역이어서 수산업도 발달했다. 또한 동부 산악의 [[신계군]], [[수안군]], [[곡산군]]은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임업도 행해졌다. 이렇듯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해,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6.25 전쟁]] 당시에 북한이 이 지역을 상실했으면 [[고난의 행군]]을 못 넘기거나, 그 이전에 이미 붕괴했을 것으로 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