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하 (문단 편집) === 퇴적 === [[파일:황하 퇴적 중국.gif]] [[산둥성]] [[둥잉]]시에 위치한 황허 하구의 퇴적 현상 (1989 ~ 2009년) --중국식 영토 확장-- --대륙식 간척사업-- [youtube(QFsQoY32n5g)] 우여곡절 끝에 강 하구까지 운반된 진흙은 차곡차곡 퇴적된다. 1194년에서 1855년 사이 황하 남쪽 하구에 쌓인 퇴적물의 높이는 '''10 m'''에 달했고, 그 퇴적물이 바다 쪽으로 밀려나간 길이는 '''90 ㎞'''에 달했다. 16세기 기록에 따르면 황하 하구의 삼각지는 매년 1.6 ㎞씩 확장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진흙이 연간 '''13억 8천만 톤'''씩 하류로 흘러내려가는데, 세계 제일의 기록이다. 이러한 [[삼각주]]의 확장을 이용하면 방파제를 잘 쌓기만 해도 손쉽게 간척지를 만들 수 있었다. 베이징도 톈진도 상고시대에는 바다였지만 황하 퇴적으로 생긴 땅이다. 역사적으로도 하북 지역의 황하 퇴적 전에는 [[중원]] 지역에서 [[만주]] 지역은 지리적으로도 연결이 힘들어 중국 기준에서 한민족을 포함한 이민족의 영역이었고 가끔씩 중원 세력이 침략해 점령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황하 퇴적으로 하북과 만주가 연결되면서 양 세력이 서로를 침범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북방 민족의 중원 침입이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중원 세력이 만주를 침범하는 사례도 [[수나라|수]]나 [[당나라|당]]의 [[고구려]] 침략 등 몇 가지 들 수 있다.] 장강 하류의 강남 지역 역시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개간되었다. 한때는 황하가 장강 하류 쪽으로 흘러서 두 강이 합류하는 바람에 토사물의 세례를 같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 상하이도 13세기 이전에는 바다였던 곳을 개간하여 만든 인공 간척지다. 황하에 간척지를 만들기 쉬운 이유와 똑같은 이유 때문에 댐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 '''댐을 건설하면 바로 토사가 댐을 메워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황하는 장강과는 달리 수자원 관리가 상당히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