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장엽 (문단 편집) == 개요 == 북한의 정치인.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상비서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란 [[대한민국 국회의장]]과 유사한 직책인데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에서는 최고 의결기구의 의장이 국가원수로 대우받기는 하나 당이 국가보다 우선하므로 로동당의 하부기관이나 다름없다. 대외적으로 민주국가 체제를 표방하기 때문에 설치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지위는 시기에 따라 좀 달랐는데 1972년부터 1983년까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재직한 황장엽의 경우, 북한이 1972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직을 신설하여 [[김일성]]을 그 자리에 앉혔으므로 이 당시에는 상임위원장이 아닌 '''상설회의 의장'''[* 의장이 겸직했다.]으로 불렸으며 명목상으로도 국가원수로 대우받지는 못하였다. >북한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중요한 직책이지만, 외국에서는 오히려 국회의장직과 비슷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더 높게 인식했다. 그래서 나는 중앙 당 비서가 된 다음에도 당대표단이 아닌 경우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장 자격으로 외국을 방문하곤 했다. >-황장엽 회고록 234페이지 황장엽 본인도 위원장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연한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원수라고 쳐도, 스탈린시대 국가원수는 칼리닌이고, 김정일시대 국가원수는 김영남이지만 존재감이 제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에선 72년 김일성이 주석이 되기전에 내각총리였음에도 조선인민군과 로동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 장군 만세'''는 외칠지언정 김두봉 최용건 따위는 실세축에도 못 들었다. 그저 그럴듯한 바지직위. >"황장엽이란 사람이 북한의 새 상임위원장이랍니다!" >"그런가? 그런데 황장엽이 누구야?" >"모릅니다. 아까 기자 클럽 다 뒤져봤는데 아는 사람이 없대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북한에서 사는 동안 이 사람의 가장 중요한 행적은 '''[[주체사상]]의 이론을 정립'''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장엽 본인은 상임위원장 보다 훨씬 중요한 자리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상비서를 역임 하였다. 실제권력은 조직비서(김일성 생존시 조직비서가 김정일)에게 있지만 사상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상징적으로 중요한 자리이다. 북한이 아무리 동문이나 동창 학연을 종파주의자로 엄중히 금지해도 알음알음 인맥이나 사제관계란건 중요시 여기는데 황장엽이 로동당내 대부분의 간부들의 스승이고, 더군다나 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상비서직은 로동당 간부 뿐만 아니라 전사회의 사상통제와 교육을 지탱하는 자리인 만큼 황장엽의 북한에서 상징적인 위치였다. 그리고 여기에 주체사상연구소장도 시기적으로 겸임하거나 단독으로 맡고 있었다. 황장엽의 아들 경모가 김일성의 사위 [[장성택]]의 맏누이 딸과 결혼하였다. 즉 황장엽은 장성택을 거쳐 김일성과 사돈 관계.[* 황장엽의 며느리가 김경희의 시조카가 되고, 김경희는 김일성의 딸이니 서로 사돈 간이 되는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