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병서 (문단 편집) === 초기 이력 === 1940년 출생이나 환갑이 되도록 전면에 나타난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전에는 1949년생으로, 1959년에 체포되어 1985년에 대전형무소에서 사망한 비전향장기수 황필구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황병서는 평택 황씨 16대손으로, 병은 항렬자다. 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고 황재길이란 사람의 아들이란 주장도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399|있다.]] 조선기록영화 <어버이 장군님, 인민군 장병들과 함께 하시여>에서 1992년 4월 23일, 조선인민군 장령들 수백명이 집단 승진할 때 김정일 옆에서 군사담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용철과 함께 군사칭호 수여식을 수행하는 젊은 황병서의 모습이 포착된 바가 있다. 이를 보면 조직지도부 출신으로 보인다. 장진성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에 사고를 쳐서 지방으로 추방을 당했지만 반성을 담은 시집을 써서 김정일에게 바쳤고 이에 김정일이 용서해주고 다시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임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2년 3월 27일,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05년 5월에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자격으로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수차례 동행하는 등 군이 아니라 당내에서 경력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황병서의 경우에는 략력이 따로 발표되지 않아 군에서 당으로 간 것인지, 당에서 군으로 간 것인지 다소 불분명한데, 적어도 군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2010년 이전에는 군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이었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이때 황병서는 조용원, 박태성과 함께 김정은의 바로 뒤에 착석하였다. 2010년 9월 27일, 최고사령관 명령 0051호에 따라 중장으로, 2011년 4월 12일, 최고사령관 명령 0056호에 따라 상장으로 진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