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환구단 (문단 편집) === 조선 ===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 왕조가 건국된 후 태조 이성계는 환구단 폐지를 요청하는 유학자들의 상소를 거부하고 환구단을 "원단"으로 이름만 바꾸어 계속 시행한다. 이후 원단은 태종 대에도 유지가 되나 성리학자들의 항소로 인해 결국 폐지된다. 나중 세조대에 잠시 부활하나 오래 못가 폐지된다.[* 이 때부터 [[소격서]]의 [[초제]]와 마니산 [[참성단]]의 단군제를 올릴 때 [[옥황상제]] 위패를 놓아 눈 가리고 아웅식 천제를 지냈으나 [[초제]]는 이단인 도교의 제사라며 유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격받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완전히 사라졌고, 참성단 제사도 비록 단군을 기린다는 유교적 효 이념을 내세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면했지만 역시 잦은 공격을 당했다.] 하지만 폐지 후에도 남교(南郊)[* 남쪽 교외라는 뜻으로 환구단은 남쪽 외진곳에 설치한다. 고려도 '남교'란 표현을 썻으며 중국의 [[천단]]도 북경성 남쪽 교외에 있다.]의 제단이란 뜻인 '남단(南壇)’ 또는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으로 이름만 바꾸고 제사를 계속 지냈다. 그러나 사대부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자만이 할 수 있으므로 제후국인 조선에서 이를 거행하는 것은 안 된다며 끊임없이 반대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은 계속해서 제사를 지냈다.[[https://www.google.com/amp/s/cm.asiae.co.kr/ampview.htm%3fno=2017052507585685392|용산에 원조 환구단 있었다? 아시아경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