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치안 (문단 편집) ==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관련 ==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및 이에 따른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의 시위진압 투입으로 일시적 치안부재 상태가 되었으나 [[2020년]]에 들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과 [[홍콩 국가보안법]], [[홍콩 국가법]]의 3연타로 홍콩 시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나버렸고 중국 정부는 중국군 투입 없이 시위를 진압해버려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총영사관도 시위 대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과 새로 도입된 [[홍콩 국가보안법]] 관련 안전 및 유의공지를 하는 판이다. 홍콩 국가보안법에선 '''외국인의 홍콩 내 정치 참여를 금지한다'''. 즉 시위에 참가하거나 홍콩 독립운동 그룹에 가담할 경우 외국 국적 비거주자도 처벌 대상이 되며[* 즉 전 세계인이 대상이라는 말. 국제법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 홍콩 밖의 외국인은 입국 거부 조치되고 중국본토 방문 비자도 거부대상이 되어 사실상 외국이 홍콩 시위대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다.[* 기업 등에서 채용시 '''해외여행에 결격이 없는 사람''' 이라는 조건 중에 중국 여행에 큰 제약이 생긴 셈이 되어 채용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홍콩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시위 참가 직원이나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직원들을 전원 해고 조치하고 침묵하거나 국가보안법 지지성명을 냈다. 중국 공산당에게 영혼을 판 거 같지만 이미 커질대로 커져버련 13억 인구의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다국적 기업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기에 이와 관련된 유의사항을 공지하는 것이며, 코로나 19 방역조치는 현재진행형으로 단계적으론 완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는 제약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시위 원인이 된 범죄인 인도법은 [[2019년]] 9월 초 철회되었으나 이번엔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의 무력진압과 긴급법 적용 시도 등으로 10-11월 한달 동안 클라이막스를 찍으며 시위가 제일 격렬해졌다. 그리고 [[2019년]] [[11월 24일]]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와 [[본토파]]라는 범민주파가 초압승했다. 이로써 시위대에 힘이 실렸고 되려 이 덕분에 절박함이 사라지자 폭력시위가 서서히 사라지며 12월 11일 [[민간인권전선]] 주최 대규모 평화시위에서 또 한번 세계적인 감동을 주었다. 애초 폭력시위 자체가 절박함에서 온 것인지라 정치적으로 우군이 대거 형성되지 굳이 민주파 정치인들이 반대하는 폭력시위를 하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이유 따위는 없었다. [[홍콩 독립운동]]을 추구하는 쪽만 과격시위를 벌이며 민주파 주류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때도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은 강경 진압을 택해 또한번 욕을 먹었다. 한편 이 시위는 [[미국]] 의회에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이 최종 발효되면서 [[미국]]과 [[중국]] 간 충돌로 격화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11234562|기사]] 처음에는 선거 결과에 따라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이 시위 진압을 자제했으나, [[2019년]] [[12월]] 들어서 홍콩 경찰이 다시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214&aid=0000997554|강경 진압]]'''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2019년]] 12월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자 점차 시위는 사그라져 갔으며 [[2020년]] 들어서는 이미 이슈는 시위에서 바이러스와 [[이란]]-[[미국]] 간 무력충돌 사태, [[호주 산불]] 등으로 바뀌어 있었고 1월 말로 가면서 바이러스 공포가 휩쓸게 되었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것이 미중 간 알력다툼으로 진화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4320818|내(트럼프)가 중국에 연락하지 않았으면 홍콩은 14분 만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며 중국을 자극한 바 있다. 이 때 [[11월 28일]] 발효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 여파에 따라 [[중국]] 국방장관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245254|홍콩에 인민해방군 투입 준비가 완료됐다]]고 선포하면서 군사 개입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는 관측도 있었다. 이미 [[2019년]] [[11월 18일]] [[홍콩 기본법]]을 무시하고[* [[홍콩 기본법]]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들어오려면 [[홍콩 행정장관]]이 직접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한테 인민해방군 출병 요청을 하고 전인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19년]] [[11월 18일]]에는 [[구룡반도]] 북부 까우룽통 병영 앞에 인민해방군이 홍콩 정부의 요청 없이 거리로 나온 바 있다. 물론 병영 앞이었던 건 사실이었는지라 중국군 당국은 병영 앞 군사도로 청소활동을 핑계 삼았다.]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가 홍콩 거리로 나와서 군사 개입을 시도한 바 있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4309975|기사]]. 이러한 움직임에 심지어 중국군 투입 임박이라는 설까지 한때 나돌았으나 홍콩 당국은 중국군 병영 앞에서 이루어진 자발적 활동으로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이 호위까지 했고 비무장이었음을 강조하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니까 미중 갈등이 심한 마당에서 중국군이 위협 제스처를 하여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 중국이 개입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중국군 병영 앞이라는 핑계로 중국 군인들을 직접 비무장이나마 언론에 일부러 노출시켜 친중파를 뽑지 않으면 무력 개입하겠단 위협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 치뤄진 구의회 선거는 중국의 위협도 안 통하고 친중파가 대거 썰려나갔고 민주파가 초 압승해 역풍을 맞았으며 이후 중국은 다시는 중국군 개입을 언급조차 못 하게 되었다. 결국 시진핑은 잘못된 정보보고로 역풍을 맞게 한 홍콩마카오판공실장을 교체했다. 결론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얻은 거 없이 손해만 잔뜩 본 셈이다. 그리고 막상 시위가 가장 격화된 [[홍콩이공대학]] 공방전에선 코 앞에 중국 육군부대와 군 병원이 있음에도 중국군은 코빼기도 안 보였고 되려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이 SDU [[경찰특공대]]를 풀어 고립 포위시켜 중국군 없이 자체적으로 시위를 진압해 버렸다. 결국 중국군 개입은 구의회 선거를 앞둔 위협 제스처에 불과했음이 입증되었다. 물론 중국은 군대까지 풀고도 전혀 이익을 못 보고 민주파/본토파가 압승하는 바람에 되려 역풍을 단단히 맞았으며 이 사건 이후 다시는 홍콩에 대한 군사개입을 언급조차 못하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협박 따위에 굴하지 않은 홍콩인 유권자들이 민주파에 몰표를 줘서 역풍을 맞은 거다.] 이후 [[2020년]]으로 접어들자 중국본토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폭격을 맞으며 제 코가 석자가 된 중국 공산당은 결국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새해 연설을 통해 '''일국양제 지속'''을 다시금 강조해야 했다. [[2019년]] 11월 당시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홍콩의 민주화 조치가 전면 수용되어 중국의 홍콩 개입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홍콩 전역에 내려진 여행경보를 내리지 않을 것임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구의회 선거를 둘러싼 정정불안이 심각했다는 얘기다. 결국 [[2020년]] 1월 구의회 선거가 외부의 우려와 달리 성공적으로 끝나고 중국이 홍콩에 개입할 명분을 잃어버려 예견한 대로 정정불안이 해소되었다고 판단해 여행경보를 한 단계 내렸다. 그러나 그 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오염지역으로 중국 영토 전역이 지정되어 특별검역지역에 들어가면서 다시금 2단계 여행경보가 일시 발령되었다. 이번에는 순전히 바이러스 유입 방지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바이러스 감염사태가 진정되어도 [[2003년]] 사스를 겪은 홍콩인들이 이미 대규모 집회를 기피하는데다[* 다만 [[2003년]] 친중파 위주의 [[홍콩 입법회]]를 통한 국가보안법 도입 시도 당시 50만 명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이 까딱하다 넘어지게 생겨서 어쨌든 다시금 지난해 같은 정정불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발행한 유의사항이다. 현재는 시위가 사라졌으나 간헐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격리수용지 반대시위가 벌어지는 [[신계(홍콩)|신계]] 지역에서는 아래 유의사항을 꼭 참고하자. >2. 홍콩에 체류하시거나 방문하시는 우리 국민들께서는 아래 시위계획을 참고하셔서 시위 장소 방문을 피하시고, 부득이하게 시위장소 인근을 방문하셔야 할 경우 아래 사항을 참고하여 신변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 (복장) 검은 옷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 검문검색을 받거나 시위대로 오인되어 경찰에 체포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복면금지법에 따라 경찰이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하는 경우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하며, 불응할 경우 체포되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 (사진촬영) 시위 장면을 촬영하는 경우 시위대로부터 사복경찰로 오인받을 수 있으므로 절대 휴대전화 등으로 시위대를 촬영하지 마십시오. 외국 관광객이나 홍콩인이 시위대를 촬영하다 폭행을 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 >○ (언행) 시위대가 있는 곳에서 시위를 비난하거나 시위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표시하지 마십시오. 한국어를 이해하는 홍콩사람들이 의외로 많으며 이로 인해 시위대와 충돌이 발생하여 예기치 않은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 >○ (교통) 시위로 인해 지하철(MTR) 운행이 중단되거나 시위장소 인근 도로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적지로 향하기 전에 교통소통 상황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공항) 항공 결항이나 지연 운항이 발생할 수 있으며, 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 운행이 전면 또는 조기에 중단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공항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 >○ (영업중단) 시위가 발생할 경우 시위장소 인근 주요 관광지나 상점이 문을 닫는 경우가 빈번하여 불편을 겪을 수 있습니다. >- [[대한민국]] [[외교부]]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 [[http://overseas.mofa.go.kr/hk-ko/brd/m_1499/view.do?seq=1345999|출처]] 위 주의사항 중 [[홍콩 국제공항]]의 경우 점거금지명령으로 출입 금지조치가 내려져서 더이상 점거될 염려는 없다. 공항으로 통하는 대중교통도 기습시위에 대비해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이 엄격히 경계하고 있으며 공항청사에서 거동수상자는 100% 체포된다. 그리고 위 주의사항에서 복면금지법도 홍콩 종심법원에서 위헌크리를 맞은데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이제는 격리수용지 반대 시위나 [[윈롱역]] 백색테러인 소위 7.21 사건 기념집회 등만 산발적으로 열리는 [[신계(홍콩)|신계]]만 좀 조심하면 될 수준이다. 되려 [[2020년]] 3월 말에는 홍콩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감염 방지조치로 4인 이상 집결을 14일 간 금지해 집회 자체가 불가능해졌으며 이후에도 [[2003년]] [[SARS]]를 겪은 홍콩인들이 집결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시위가 심했던 시기로 뽑히는 중국 국경절인 2019년 10월 1일은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100|전쟁터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 날 경찰이 시위대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4226988|'''실탄을 발사'''해 10대 학생이 중태에 빠졌다.]] 이후 복면금지법 발효로 대규모의 저항이 있어서 [[MTR|홍콩 지하철]]은 역과 전동차가 파손되는 등 피해를 겪고 10월 첫주 주말에 내내 불통이었다가 간신히 복구되었으며 이 시위는 결국 10월 첫째 주말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이 진압해 모든 걸 정상화시켰다. 이후 시위는 소강상태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는데 긴급법 추가적용을 의식해서였다. 그리고 11월 9일, 정관오 지역에서 시위에 참가한 [[홍콩과기대학]] 학생 차우즈록 군이 [[최루탄]] 공격을 피하려다 그만 3m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다시금 시위가 불붙어,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여명행동 4.0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규모로 출근길 교통방해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11월 11-13일 3일 간 다시금 [[MTR|홍콩 지하철]]이 일시적으로 운행에 차질을 빚었으나, 14일부터는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이 전략을 짜면서 지하철 마비시도를 모두 무력화하고 막힌 도로도 모두 뚫었으며 11월 16일 토요일에 과격 시위대인 일명 용무파들을 [[홍콩이공대학]]에 토끼몰이해 감금해 버렸다. 이때 대학 캠퍼스가 새로운 충돌지점이 되어서 대학 학기가 조기종강하고, 캠퍼스 폐쇄로 유학생들은 전원 학교에서 쫓겨나 귀국하거나 귀국하지 못했을 경우 홍콩 내 친구집 등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똑같은 캠퍼스 점거시위 무대였던 [[홍콩중문대학]]은 1주일만에 시위대가 자진 철수했으나 이공대학은 화염병과 투석, 심지어 '''[[활]]'''까지 쏘며 극렬 저항했고, 결국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의 새 경무처장 [[크리스 탕]]은 강철주먹이라는 별명답게 테러진압 특공대인 SDU [[저격수]]들을 근처 고층건물에 배치, 투석기, 활, 화염병 소지자 전원을 [[테러리스트]]로 분류해 발견 즉시 사살을 지시했으며 SDU는 섬광탄을 터뜨리며 지금까지 시위대가 마주쳐 온 PTU 기동대와는 격이 다름을 선보였다.[* 소위 말하는 어린 세대에 [[홍콩 독립운동]] 지지 세력이 주축인 용무파들도 SDU를 마주치자 공포를 느끼고 교내에 숨어버렸다. 전날 [[양궁]]까지 꺼내와 활을 쏘며 저항했던 건 상대가 일반 경찰이나 PTU여서 쉽게 본 것인데 그 다음날 진짜로 [[크리스 탕]] 새 경무처장이 [[저격수]]를 배치하여 자신들의 머리통을 날릴 준비를 하자 살해 위협을 느끼곤 숨어버렸다. 그리고 이때 아직 어린 나이인데다 혹독하게 고생해본 적도 없는 학생들은 PTSD 증세까지 보이게 되었고 내부 분열까지 일어나 패배감이 만연해 하나둘씩 자진투항 혹은 탈출을 시작했다.] 고립 및 포위작전으로 전기, 수도공급과 물자공급 등이 차단되고, 캠퍼스 밖으로 나가는 통로도 모두 막혀버리며 졸지에 감금되어 버린 시위대는 유서까지 쓰며 극렬히 버텼으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열악한 위생환경[* 이공대학 캠퍼스 내에는 청소차가 못 들어와 쓰레기가 수북히 쌓여있고, 해충 등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으며 시위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경찰 침입 우려로 잠도 못 잔 학생들은 하나둘씩 탈진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대부분 자진 투항하였고 일부는 하수구 등으로 빠져나갈려다 걸려서 전원 체포됐다. 이 와중에 12명 정도는 믿기지 않는 탈출에 성공했다. 어쨌든 이공대학 시위는 11월 22일 사실상 이공대학이 뚫리고 시위대 대다수가 자진 투항하여 진압됐고, 과격시위를 이끌어 온 용무파들도 이정도의 강경대응은 예측 못했는지 당혹스러워 했으며 결국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이후 거짓말처럼 홍콩 거리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져 버렸다. 경찰은 이공대학 학생들을 구하러 거리 점거시위에 나선 몽콕과 야우마테이, 침사추이 일대 거리 시위까지 모두 진압했고 거리 시위대 역시 PTU가 실탄을 장전한 [[자동소총]]을 들고 나타나고, 섬광탄과 함께 정예 특공부대 SDU가 등장하자 겁 먹고 다신 행동에 못 나서게 되었다. 이후 11월 24일 구의회 선거가 외부 우려와 달리 중국군 개입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민주파의 대승으로 시위에 참가하던 시민들이 승리감을 느끼게 되면서 울분과 절박함이 사라졌고, 여기에 경찰의 강공으로 용무파라 불리는 과격 시위대 그룹은 완전히 무력화되면서 폭력 역시 급속도로 퇴출됐다. 그리고 바이러스 공포가 이슈가 된 [[2020년]]이 되자 거리에 시위는커녕 사람 자체가 사라졌다.[* [[2003년]] 사스 악몽을 겪은지라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어도 한동안 대규모 집회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더 이상 대중교통 마비 시위도 없어졌고 [[홍콩이공대학]]에 남은 학생 30명에 대해서는 선거에서 이긴 야권 정치인들이 경찰에 불체포를 요청할 테니 빨리 나오라고 설득했으며 결국 다 나왔다. [[2019년]] 하반기 시위와 관련한 현지 상황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일자별 경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바이러스 패닉이 휩쓴 [[2020년]] 1월이 되자 시위는 어느덧 서서히 사라졌으며 현재는 [[신계(홍콩)|신계]] 및 [[구룡반도]] 외곽의 검역소 및 격리수용소 예정지에서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벌어졌다가 역시 사그라들었다. [[2020년]] 3월 홍콩 정부가 14일 간 4인 이상 집결금지 조치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감염방지를 이유로 명령했으며 이제는 시위는 켜녕 거리에 사람 자체가 사라졌다. 관광객은 시위 여파로 줄어서 시위 기간, 특히 7-8월 매일마다 지난 10월 1일 국경절 수준 충돌이 일어나던 동안, 시위가 없는 구역 기준으로 돌아다니는 관광객도 여전히 있었지만 관광객 전체 수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003&aid=0009484267|크게 감소했다]]. 특히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감소한 여파가 컸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홍콩경제 살리기 프로젝트로 다시 대륙인 유커들이 정책적으로 대거 들어오며 관광수지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위가 조용해지자 곧바로 터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폭격으로 중국 국경이 봉쇄되고 유커들의 단체관광도 막히면서 홍콩의 관광업계는 빈사상태에 이르게 됐고 정부가 긴급 지원에 나선다. 현재 [[홍콩 국가법]],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어찌 보면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보다 더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이젠 지난 2014년 시위를 조직한 데모시스토, 2019년 1년 간 광복홍콩이라는 이름으로 기나긴 시위를 조직한 [[홍콩 독립운동]] 세력들까지 모두 활동중단 및 자진해산, 영국이나 대만 등지로의 망명을 선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홍콩 독립운동은 사실상 궤멸 수순을 걷고 있다. 시위 상징구호[* [[광복홍콩 시대혁명]], Be Water, Fight For Freedom 등이나 [[영광이 다시 오길]] 등의 민중가요들이 해당한다.]들 역시 죄다 금지먹고 홍콩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