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범도 (문단 편집) == 기타 == * 경력이 경력인지라 종종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다는 말이 도는 인물이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지역 한인들과 함께 의용군 편성을 자원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인 1942년 8월 ~ 1943년 2월엔 이미 74 ~ 75세의 노인이었으니 가능성이 낮기는 하나 [[독소전쟁]] 자체가 나이를 불문하고 전선에 투입되는 일이 잦았던 전면전이었던 만큼 완전히 가능성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게 사실이었다 해도 소련 당국이 [[고려인]]만의 부대를 창설하는 것은 절대 엄금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고려인만의 일이 아니었다. 일부 [[소수민족]](예: 체첸인)들은 스탈린의 의심병 때문에 아예 참전을 금지당한 경우도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있던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인 참전 금지 사태에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하나, 이는 강제이주 정책에 해당하는 말이다. * 늙은이가 어떻게 전쟁에 나가느냐며 [[소련군]] 장교가 조롱하자 '''[[방사형|공중으로 동전을 던지고 권총으로 명중시켜 입을 다물게 했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지나 이 일화는 고려극장의 배우였던 리함덕의 일화가 각색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극장 배우들은 홍범도가 독립군 대장이었던 것은 알았지만 그정도의 거물인지는 몰랐고 단지 총을 잘 쏜다는걸 듣고 한번 보여달라하자 이를 승낙한 홍범도가 5m쯤 떨어져서 5전짜리 동전을 공중에 던지라고 했고 던지자 마자 총으로 그 동전을 쏘아 맞추었다는 이야기.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90cm에 이르는 장신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독립운동가]] 최진동 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면 체격 차이가 상당하다. 당시 평균 남성 키가 163-165cm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으로 따지면 2m 이상의 장신이나 마찬가지. 당시 운동선수들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체격이었다. 신장 180대만 되어도 세계적으로도 큰 키에 속하며 게다가 21세기에도 대한민국에서 190대의 장신은 쉽게 보기 힘들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구척장신의 장군’. 뛰어난 사격술을 가졌는데 키도 큰 사람이 말을 탄 상태로 돌격하면 그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듯하다. * 2016년 2월 [[대한민국 해군]]은 [[손원일급]] 잠수함의 7번함을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60229&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005|'홍범도함'으로 명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4월 5일 진수되었다. * [[일제강점기]] [[아리랑]]을 제작한 영화 감독으로 유명한 [[나운규]]가 홍범도의 부하 중 하나였다. * 2020년 10월 22일,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연구로 유명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반병률이 2018년 한 학술대회에서 이미 공개한 바 있는 1922년 러시아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한 홍범도의 영상을 [[KBS]] 특집 프로그램에서 다시 공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이하여 홍범도의 일생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ZbF96w6ag9A)]}}}||{{{#!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Waq0Gr2G8U)]}}}||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