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길동전 (문단 편집) ===== 택당 이식의 기록 ===== 물론 이에 반박하는 의견 역시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우선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근거는 동시대를 살았던 이식의 기록 때문이다. 허균은 1569년생이고 이식은 본문에도 나왔다시피 1584년생인데 두 사람의 나이는 15세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허균이 죽었을 때 이식은 이미 30대 중반의 선비었으므로 허균의 행적을 실제로 보고 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실질적으로는 동시대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 그리고 이식은 허균의 제자였다. 직접 보고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2900&code=kc_age_30|#]] 이식의 말은 인과관계를 헷갈릴 만한 복잡한 내용도 아니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발언한 것도 아닌, 자신의 문고에 적은 내용이므로 딱히 곡필했을 가능성은 낮다. 택당 이식 이후 심재(沈梓, 1624년 - 1693년)의 《송천필담(松泉筆譚)》과 홍한주(洪翰周, 1798년 - 1868년)의 《지수점필(智水拈筆)》는 이식의 <택당집>을 인용해서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허균 사후 조선의 문인들이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재는 남인의 과격파이며, 홍한주는 정조 초 세도가 [[홍국영]]의 친척 홍낙명(洪樂命)의 손자이다. 당파나 출신과는 관계없이 택당 이식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것을 보아 이식의 기록이 당시 문인들에게 신뢰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최초의 한글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금의 상황에서야 재조명받은 것이다. 이식이 살던 당대에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또한 공개석상에서 중요하게 한 발언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문고에 '홍길동전의 저자는 허균이다' 정도로 짧게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만약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니었다 해도, 이식이 의도적으로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 만들어서 얻는 이득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소문 자체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닌 이상 진실을 적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