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금보 (문단 편집) == 약력 == 유년 시절의 이름은 삼모(三毛)로[* 위에 써있는 영어 이름을 보면 알 테지만, 바로 유년 시절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 이름에서 따왔다. 부모가 맞벌이였기 때문에 유년기를 조부모 밑에서 보냈는데, 할머니 전사앵(錢似鶯)은 당대의 유명 여성 액션 배우였고, 할아버지 홍중호도 80편이 넘는 영화를 찍은 영화감독이었다. 홍금보의 부모도 모두 영화업계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홍금보는 중국 영화업계의 로열패밀리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 부인은 영화배우 고려홍(高麗虹),[* 1965년생으로 황백혼혈 여배우. 영문명은 Joyce Mina Godenzi. [[보통화]]로는 가오리훙.]일뿐만 아니라 큰아들 홍천명(洪天明)은 홍콩 TVB MC 겸 배우, 둘째 홍천상(洪天祥)은 가수, 셋째 홍천조(洪天照)는 배우이기도하다. 게다가 장녀 홍후유(洪煦愉)도 연예계 진출설이 돈다. 한마디로 홍씨가문자체가 '''예능업계의 로열 패밀리'''라고 보면된다. 원래 부인은 [[한국인]] 조은옥(曺恩玉)이었지만 이혼했고, 1987년작《동방독응(東方禿鷹)》에서 만난 고려홍과 1995년에 재혼했다. 3남 1녀가 모두 전처 소생으로 [[한중혼혈]]. 10살 때 할머니가 우점원(于占元) 중국희극연구학교([[경극]]학교)에 입학시켰고, 8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이때 받은 예명이 '''원룡'''(元龍)이다. 칠소복(七小福)[* 역대 멤버는 총 14인이라 한다. 때문에 말하는 팬마다 조금씩 멤버가 다르다. [[가화삼보]] 외에 원규, 원화, 원덕, 원무, 원태, 원추, 원빈 등이 유명하다.]의 첫째로 활약하며 무대에 섰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당시 동기 가운데 원루(元樓 [[성룡]]), [[원표]](元彪)는 훗날 홍금보와 함께 그 유명한 [[가화삼보]](嘉禾三寶)로 명성을 떨친다. 그 밖에 국내 팬에게 친숙한 인물로는 영화 《[[쿵푸허슬]]》에서 돼지촌 주인 부부를 연기한 원화, 원추가 있다. 영화 《[[트랜스포터]]》를 공동 감독한 원규도 멤버였다고 한다. 1962년 영화 대소황천패(大小黃天霸,)라는 흑백영화에서 출연하는 7명의 아이들 중에 [[성룡]]과 같이 나왔다. 9살 때, [[https://www.youtube.com/watch?v=kb3aRF1tHzU|애적교육(愛的教育)]](1961)으로 영화 배우로 데뷔했다.[* 사족으로,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여배우 임취(林翠)는 외팔이 무사로 유명했던 [[왕우|왕우(王羽)]]의 첫 번째 부인이다.그리고 [[증강]]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이후 아역으로 몇 작품 더 출연했다.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때는 희극학교를 졸업한 뒤였으며, 처음에는 배우가 아닌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며 무술지도를 연구했다. 1970년, 무술 감독으로 신생 [[골든하베스트]](嘉禾電影有限公司)와 계약했고, 1971년, 《탈명금검(奪命金劍)》으로 금마장 무술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소룡]]의 《[[정무문]]》(1972), 《[[용쟁호투]]》(1973), 《[[사망유희]]》[* 중반부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에 참여하였으며, [[호금전]] 감독의 《영춘각지풍파(迎春閣之風波)》(1973)와 《충열도(忠烈圖)》(1975) 의 무술 감독을 맡았다. 또한 이 무렵 허씨 3형제의 《[[미스터 부]]》 1, 2탄(1976)에도 참여했다. '''한마디로 홍콩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굵직굵직한 작품들의 무술감독을 모두 맡은 것이다.''' 1977년, 《삼덕화상과 용미육(三德和尚與舂米六)》[* 국내 개봉명은 중원호객(中原虎客)]의 주연 및 감독을 맡으며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한 홍금보는 1978년부터 가보영화사, 보상영화사, 보화영화사[* 홍금보의 대표작들을 많이 제작한 보화(寶禾) 영화사는 [[골든하베스트]] 산하의 홍금보 전용 영화 제작사였는데, 골든하베스트의 추문회 회장이, 홍금보 주연의 영화가 지역 극장에서 2주일 넘게 상영되는 것을 보고 설립을 허락했다고 한다.] 등을 차례로 설립하며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홍금보는 기존의 쿵푸 영화 스타일을 탈피하고자 다양한 시도 끝에 [[영춘권]]에 주목, 영춘권을 소재로 《찬선생과 조전화(先生與找錢華)》(1978), 《패가자(敗家仔)》(1981)[* 홍콩 액션 영화 걸작선에 빠짐없이 꼽히는 작품. 홍금보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 꼽았다.] 등을 감독했다. 영춘권에 대한 사랑은 먼 훗날 드라마 《영춘(詠春)》(2006)과 영화 《[[엽문(영화)|엽문]](葉問)》(2008)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는 홍금보의 전성시대다. 1980년에 《귀타귀(鬼打鬼)》의 주연과 감독을 맡아 홍콩식 코믹 호러물의 전형을 제시하면서, 《[[강시선생]](殭屍先生)》(1985)[* [[일본]] 개봉 제목은 《영환도사》, 국내엔 《생과 사》라는 제목으로 해적판 비디오로 먼저 나오기도 했으나, 이후 개봉할 때는 《강시선생》으로 개봉했고 정발판 비디오도 강시선생으로 나왔다.], 《강시가족》(1986)[* 일본의 개봉 제목 《영환도사2》를 국내 개봉에 활용, 《영환도사》로 개봉하여 한국에서도 주연, [[임정영]]은 영환도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등도 연이어 흥행시키면서 [[강시]] 붐을 일으켰으며, 《[[쾌찬차]](快餐車)》(1984), 《용적심(龍的心)》(1985), 《비룡맹장(飛龍猛將)》(1988) 등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여 명실상부한 [[가화삼보]]의 시대를 열었다. 제작에 감독, 주연까지 도맡아 했던 《[[오복성]](奇謀妙計五福星)》(1983)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복성 시리즈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을 풍미한 이른바 '마담물'의 원조인 《[[예스 마담]](皇家師姐)》(1985)도 홍금보가 제작했다.[* 홍금보는 예스 마담 초대 주연인 [[양자경]]의 데뷔작인 범보(The Owl vs Bombo,1984)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시드니 포이티어]]가 나온 "언제나 마음은 태양 (To Sir With Love, 1967)" 줄거리를 거의 베낀 것이었다. 우습게도 한국에선 1989년 7월 15일에서야 조연인 양자경이 주연인양 뻥치며 당시 은퇴한 양자경 마지막 영화라고(극장에서 이 영화가 양자경의 마지막 영화라는 자막까지 있었다. 이 영화에는 이후에 예스마담에 함께 출연한 [[나부락]]이 에어로빅 강사역으로 잠깐 나온다.) 홍보했었다.] 이러한 홍금보의 활약으로 홍콩의 쿵푸 영화는 시대극에서 현대물로 변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대두한 홍콩 뉴웨이브 물결이 시간이 흐를수록 뻗어 나아가기 시작한 끝에 1990년대 홍콩 영화계가 뚜렷한 세대 교체를 이루자, 홍금보는 골든 하베스트와 결별하고 한 발 뒤로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고 새로운 조류를 시험했다. 1997년, 영화 《나이스 가이》를 감독하면서 [[미국]] 시장에 데뷔했으며, 1998년 [[미국 드라마]] 《[[동양특급 로형사]](Martial Law)》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꽤 높은 인기를 끌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2시즌 44화로 종결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메달리온》(2003), 《삼국지 용의 부활》(2007)의 제작 및 《[[엽문(영화)|엽문]]》을 감독했다.[* 엽문 2 : 종사전기에서는 엽문([[견자단]] 분)의 라이벌로 직접 등장하기까지 했었다.] 《[[살파랑]](殺破狼)》(2005)에선 주연 악역으로 등장해서 [[견자단]]을 상대로 기존의 쿵푸 액션이 아닌 종합격투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엽문2》에서는 [[홍가권]]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6년에는 《홍금보의 보디가드(特工爷爷)》[* 대략적인 스토리는 전직 특수부대 출신의 '''치매노인''' 홍금보가 친한 이웃소녀를 구하려고 악랄한 갱단을 단신으로 괴멸시킨다는 내용으로 [[택시 드라이버]]에서 시작된 [[아저씨]]나 [[테이큰]] 같은 스토리라인의 영화다.]주연을 맡아 살벌한 조직 범죄자들을 상대로 결코 녹슬지 않은 살상 액션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예전처럼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촬영할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 짤막한 컷을 이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했다. 많은 나이와 과체중으로 말년에 관절에 무리가 와서 체중감량 전엔 걷지도 못했을 정도니 아무래도 '날으는 돼지'의 모습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