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광제 (문단 편집) == 기타 == [[건문제]]와 [[경태제]], [[숭정제]]에게 각각 혜종(惠宗), 대종(代宗), 의종(毅宗)의 묘호를 올린 인물이 바로 홍광제다. 어찌 보면 홍광제가 한 일 중 그나마 좀 의미있는 일. 다만 청나라는 남명 정권이 올린 묘호를 인정하지 않아 기존에 부여됐던 시호가 계속 쓰였다. 또한 자살한 숭정제의 아들인 [[주자랑]]에게 헌민태자(獻愍太子)를, 아버지 [[주상순]]에게 공황제(共皇帝)의 시호를 추서하였다. 피난 조정이 [[난징]]에 자리잡게 되자, [[정난의 변]]으로 상당 부분 파손된 뒤 재건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던 난징 고궁[* 명 초기 [[난징]]이 수도였던 시기의 황궁.]을 중건하려 했다. 그러나 즉위한 지 불과 1년 만에 난징이 청나라에게 함락되면서 중건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중단되었고, 이후 난징 고궁은 다시는 중건되지 못했다.[* 그나마 청나라 시기에도 일부 전각이 남아 관청 용도로 쓰이기는 했지만, [[태평천국 운동]] 때 태평천국군이 새 궁궐을 짓는 데 사용하기 위해 전각 부재를 뜯어가 모든 전각이 사라졌고 지금은 전각의 주춧돌 일부와 동, 서, 남문의 석축만이 남아있다.] 도현신의 도서《중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에서는 적군이 와도 주색만 탐했다며 악당으로 분류했다. [[분류:명나라/황제]][[분류:1607년 출생]][[분류:1646년 사망]][[분류:베이징시 출신 인물]][[분류:교수형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