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박(보석)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www.scandi.travel/amber_room.jpg|width=100%]]}}}|| ||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궁전]] 내부 '''호박방(Amber Room)'''[* 궁전내부에 말 그대로 엄청난 양의 호박 조각들로 치장된 방이 하나 있었는데, 이 방을 사람들은 '호박방'이라고 불렀다. 호박방에 쓰인 호박만 무려 450kg에 달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예카테리나 궁전#s-3|예카테리나 궁전 문서의 호박방 문단]]을 참조.] || 인류가 언제부터 호박을 채취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대 이집트]] 시대의 [[파라오]]의 무덤이나 [[고대 그리스]]의 신전 유적에서 호박 장식품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애용된 보석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는 주로 [[발트 해]] 연안 지역에서 채굴되었는데, 영롱한 노란색을 내는 투명한 돌이라는 점과, 그 속에 종종 [[곤충]]과 같은 생물이 들어있는데서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는 점 때문에, [[이집트]]와 [[그리스]], [[페르시아]]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탈레스]]가 호박을 문질러서 [[마찰 전기]]를 일으킴으로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기]] 현상의 기록을 남긴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어]]로 호박을 가리키는 엘렉트론(ἤλεκτρον)에서 전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electricity가 유래했다.] 서기 1세기 [[고대 로마]]의 작가이자 과학자인 [[대 플리니우스]][* 참고로, 이 사람은 [[폼페이]]시의 몰락과도 연관이 깊은 사람으로, 폼페이가 [[베수비오산]]의 분화로 불타는 와중에, [[화산]]이 분화하는 과정을 좀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겠다고 베수비오 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가 [[화산재]]와 유독가스에 질식해서 사망한 바 있다. 이는 서구권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 분화 관찰 기록이다. 그의 조카 [[소 플리니우스]]가 삼촌의 관찰 결과를 토대로 베수비오 산의 분화 과정을 정리한 기록이 현존한다.]는 호박의 원산지를 [[발트 해]] 연안과 [[고트족]]들의 거주영역[* 오늘날의 [[독일]]-[[폴란드]] 국경 지역.]으로 기록했다. 과거엔 호박을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발트어파]] 계열 민족들이 주로 채굴했고 [[그리스인]] 및 [[페니키아|페니키아인]] 상인들이 [[서유럽]]과 [[지중해]] 연안 및 [[중동]] 등지로 널리 수출했다. 이 때문에 아예 호박 무역만을 위한 육상 교역로가 개척되기도 했고, 이 무역로는 이른바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B%B0%95%EC%9D%98_%EA%B8%B8|호박의 길]]로 불리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및 [[발트 해]] 연안에 살던 [[켈트족|켈트]]계와 [[발트족|발트]]계 및 [[게르만족|게르만]]계 민족들에게 엄청난 문화적인 영향을 주어서 이 지역에서 [[https://en.wikipedia.org/wiki/Nordic_Bronze_Age|북유럽 청동기 문화]][* 기원전 1700년에서 기원전 8세기까지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 및 [[독일]] 북부에서 번성했던 [[청동기 시대]]의 [[게르만족]] 문화를 말한다.]가 발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유럽]]과 [[동유럽]]에서 수출되는 호박의 일부는 당시에 국제적인 상인 집단으로 유명했던 [[페니키아|페니키아인]]과 [[유대인]] 상인들에 의해, [[실크로드]]를 타고 멀리 [[중국]]까지 수출되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오던 이 호박 무역은 [[중세]] 및 [[근대]]로 넘어와서도 [[발트 해]] 연안 국가들의 훌륭한 돈줄이 되어주었고, 때문에 이 지역의 대부분을 [[러시아 제국]]이 지배하게 된 뒤로는, 당시 러시아의 황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가 자신의 궁전인 [[예카테리나 궁전]]의 한 방 전체를 호박으로 장식해서 [[유럽]] 각국에 자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방은 '호박 방'이라 하여 현재도 [[예카테리나 궁전]]과 함께 잘 보존되었다. 하지만 이 방의 호박 장식들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군대가 약탈했고, 전후에 [[소련]] 당국이 호박을 잔뜩 이용해 복원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유럽 이외 지역에서는 19세기 초에 [[미국]] [[뉴저지]]주에서 호박 광맥이 발견되면서 처음으로 채굴이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탈레스]]가 털에 문지른 호박이 가벼운 종이나 털 등을 끌어당기는 [[정전기]]가 발생하는 것을 기록했다. 그래서 정전기에도 호박을 뜻하는 그리스어 ἤλεκτρον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탈레스가 이런 현상을 발견한 후, 16세기 자기와 전기에 관해 체계적인 연구를 하였던 영국의 월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가 처음으로 electricit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호박을 고대 그리스어로 엘렉트론(ἤλεκτρον)이라고 하는데, 길버트는 전기를 호박의 힘, 호박력(琥珀力)이라는 뜻으로 electricity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한편 현대 그리스어로 호박은 '케흐리바리(Κεχριμπάρι)'라고 한다. 호박의 [[튀르키예어]] 단어인 케흐리바르(Kehribar)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수백 년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 바람에 그 영향으로 튀르키예어 단어가 그리스어 단어를 대체하였다] 정전기 연구는 정전기를 라이덴 병이라는 원시적인 충전지에 축적하거나 정전기 발생 원리를 응용한 전시대적인 기술의 [[발전기]]를 개발하면서 상대적으로 고압 전류를 다룰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하였고, 뒤이어 근현대의 전기 공학이 되었다. 그래서 전기 관련 기술, 학문 등에는 이러한 기술 발전에 근거하여 일렉트로닉이라는 명칭이 붙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