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국전쟁 (문단 편집) === 제제 철회 === 위안스카이가 총통 자리를 사수하려는 사이에 호국군은 전열을 정비하여 사천성 납계, 강안, 남천, 기강과 호남성 영상, 영순 등을 점령했다. 위안스카이는 국무경, 각부 총장, 참정원 참정, 숙정청 장관, 평정원 원장을 불러 군주제 철회 문제를 논했다. 군주제 철회에 사실상 이론이 없었으나 위안커딩이 군주제 철회 반대를 호소했다. ||주안회가 성립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미 7개월이 되었습니다. 이 7개월간에 얼마나 많은 심혈을 쏟았고,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고,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까? 천신만고를 거쳐 군주제를 실시하는 목적에 도달하였습니다. 서남 몇 개 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하여 군주제를 철회한다면 군주제 반대자들의 목소리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황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총통은 반드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남 각 성은 폐하께서 황제가 되는 데 대해서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독립을 선포하여 군주제를 철회하라고 협박하는데 이후에 총통이 되는데도 반대하지 않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지금 폐하께서는 적극적으로 군주제를 실시하는 것이 오히려 상책입니다. 서남에서 반발한다 하지만 북방의 군민들은 잠잠하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이때 즉위하여 서남 각 성이 군사로 북방을 침범한다 해도 거리가 멀고 넓은 땅에서 오래 버티면 베이징까지 쳐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승부는 아직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들이 귀순하지 않는다 해도 장강이나 황하를 경계로 한 것에 불과합니다. 폐하께서 온 나라를 통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강산이 절반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오늘 스스로 군주제를 철회하는 데 비하면 어느 것을 얻고 어느 것을 잃겠는지 폐하께서 잘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위안스카이는 이 상소문을 보고 또 흔들렸으나 3월 20일 강소성의 [[펑궈장]], [[장쉰]], 강서성의 리춘, 절강성의 주서, 산동성의 [[진윈펑]] 등 5명의 장군이 연명으로 위안스카이에게 조속히 제제를 취소하고 운남, 귀주의 노여움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타전했다.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안 위안스카이는 다음날인 3월 21일 [[쉬스창]], [[돤치루이]], [[리위안훙]] 등을 정중히 초청하여 군주제 철회의 뜻을 밝혔다. 출석자들은 위안스카이의 뜻에 찬성했으나 량스이와 주계검이 군주제 철회를 반대하자 위안스카이는 펑궈장과 장쉰 등이 보내온 비밀전보를 보여주었다.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안 주계검 등도 제제 철회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3월 22일 위안스카이는 군주제 철회 명령서를 발표하고 3월 23일을 기해 홍헌 연호를 폐지하고 중화민국 5년으로 되돌릴 것을 밝혔다. ||작년 12월 12일에 승인한 제제안을 즉시 취소한다. 모든 죄과는 나에게 있다. 그러나 제제안은 취소한 이상, 앞으로도 여전히 지방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그 이유의 여하를 불문하고 나는 전국통치의 책임을 진 대총통으로서 그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1916년을 기준으로, 제제 83일만의 일이었고 12월 12일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103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제제를 추진한 개인과 기관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제제를 주장하였던 사람은 본래 국기를 튼튼히 하는데 있었으나 그 애국하는 방법이 도에 어긋나 나라를 해치게 되었다. 위안스카이는 쉬스창을 국무경에, 돤치루이를 참모총장에 임명해 제제 반대파들을 포섭하려 했다. 또한 3월 25일 리위안훙, 쉬스창, 돤치루이의 명의로 루룽팅, 량치차오, 탕지야오, 차이어에게 군주제가 철회되어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전쟁을 그만두고 뒷수습을 하자는 전보를 보냈으며 각 성에서 보낸 추대서를 일괄적으로 폐기하고 군주제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폐기된 민국 시대의 법령들을 복구했다. 3월 26일 군주제 관련 서류 800여건이 폐기되었고 4월 1일 리위안훙, 돤치루이, 쉬스창 명의로 6가지 평화회담 조건이 제시되었다. * 운남, 귀주, 광서는 독립을 취소한다. * 세성의 치안은 삼성의 장관이 유지한다. * 세성에서 모집한 신병은 해산한다. * 전선으로 나갔던 세 성의 군대는 원 주둔지로 철수한다. * 세 성의 군대는 오늘부터 정부군과 교전하지 못한다. * 세 성은 베이징에 대표를 파견하여 뒷수습을 상의한다. 이날 참정원이 "경솔한 행동으로 대총통에게 누가 미쳤다고 인정하고 의안의 결정을 중지한다"는 결의를 통과시켜 위안스카이는 구 국회를 복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4월 2일 참정원이 군주입헌 국체안과 참정원 총대표 명의를 취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