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혐중/대한민국 (문단 편집) === [[조선]]의 혐중 === >사람들에게 중국에도 학문에는 [[이황|퇴계]] 같은 사람이 있고, 문장에는 간이 같은 사람이 있고, 명필로는 [[한석봉|한호]]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발끈하여 낯빛이 변하며 어찌 그럴 리가 있는냐고 할 것이다. 심한 자는 그런 말을 한 사람에게 죄를 주려고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시험 삼아 "만주 사람은 말소리가 개 짖는 듯하고, 그들의 음식은 냄새가 고약하여 가까이 할 수 없다. 뱀을 시루에 쪄서 씹어 먹고 황제의 누이동생은 역졸과 사통한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말을 옮기느라고 분주할 것이다. >---- >박제가, 『박학의외편』 「북학변」[*출처 임용한 저서, 난세에 길을 찾다.page 229 인용] 한국 이전의 조선시대는 특히 병자호란 이래 [[청나라]]에 대한 증오심과 반감이였다. 임용한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 조선의 18세기 조선의 정신세계를 휘저었던 강박증의 하나는 [[병자호란]]의 치욕이였으며 국가적, 민족적 수치를 씻고자 하는 노력이야 탓할 것이 없으나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 수치를 씻을 수 있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 병자호란이 끝나고 북벌론이 등장했으나 청나라가 여전히 강성하자 북벌은 정신적 북벌론으로 그리고 [[소중화]]라는 기묘한 국수주의로 변질되었으며 이는 청과 중국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비하의식과 함께 한국이 가진 것(성리학, 서예, 음식)에 대한 우월의식을 가지도록 했다. 그러나 조선의 혐중은 중국 그 자체보다는 [[오랑캐]]였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만을 대상으로 했다. [[한족]]과 [[명나라]]에 대해서는 부모의 나라[* 청나라에 대해서는 '부모의 원수'라 표현하기도 한다.]로 부르는 등 극히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