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영철 (문단 편집) == 생애 == 1949년 1월 11일, 함경북도 어랑군에서 태어나서 1966년 3월, 조선인민군에 입대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 대대장, 련대장, 려단장, 훈련소 참모장, 부총참모장, 정찰국장 등을 거쳤다. 공식략력엔 언급이 없으나 통신군관학교를 졸업했다는 정보가 있다. 1992년에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총참모부]] 통신국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준장|소장]]으로 처음 별을 달았고, 1995년 [[소장(계급)|중장]]으로 진급했다. 1998년 7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계에도 진출했고, 2003년에는 [[중장|상장]]으로 승진해 [[평안북도]]와 [[자강도]]를 관할하는 8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군부의 비대한 몸집 때문에 별이 넘쳐나는 북한에서는 그냥 지나가던 장군 한 사람 정도로 취급되었다. 군단장 직책도 [[황해남도]]나 [[강원도(북한)|강원도]] 같은 최전방을 담당하는 '전연군단'이 아닌 후방군단이라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인물이었다. || [[파일:현영철.jpg]] || || ▲ 인민무력부장 시절 || 하지만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국방위원장 명령을 통해 [[김정은]], [[김경희(1946)|김경희]], [[최룡해]] 등과 함께 [[대장(계급)|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존재감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면서 북한 바깥에서도 김정일 집권 후기에 상당히 빠르게 진급한 군 고위 관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집권한 뒤인 2012년 2월에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7월에는 그동안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리영호]]가 실각하면서 해당 직위들을 넘겨받음과 동시에 [[조선인민군 차수]]로 승진해 정계와 군부에서 서열이 급상승했다. || [[파일:attachment/babypigandhyon.jpg]] || || ▲ 차수에서 강등당한 대장 시절 ||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 군 경력의 정점에 올랐구나...싶었는데, 조선로동당 창당 기념일인 2012년 10월 10일에 김정은이 측근들과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참배 행사를 가졌을 때 뜬금없이 차수 계급장이 아닌 대장 계급장을 달고 경례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계급이 [[강등]]되었음이 드러났다. 보직도 '''중대장'''으로 변경되었다 (한 달간)북한 언론들이 강등에 대한 어떠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고, 같은 달 2일에 벌어진 [[제22보병사단#s-5.4|인민군 병사의 탈북 사건]]에 대한 질책성 인사라든가 김정은의 군부 길들이기용 강등이라는 등의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2월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군에서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최룡해]]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차수 계급장 대신 대장 계급장을 단 정복 차림으로 김정일 추모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조선인민군 내에서 차수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이 관측되고 있다. 그런데 최룡해는 2013년 2월에 다시 차수로 복귀했기 때문에 현영철의 재진급 여부에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강등 후에도 계속 대장 계급을 달고 [[총참모장]]으로 재직했고, 2013년 5월 무렵 아무런 공식 발표 없이 인민무력부장으로 있던 [[김격식]]에게 총참모장 직책을 넘겨줬다. 이후 6월에 김정은이 강원도 주둔 5군단의 초소를 현지 지도했을 때 찍힌 사진에 [[중장|상장]] 계급을 달고 나와 또 1계급 강등이 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아직 공식 직책은 나오지 않았고, 계급을 보면 5군단장 혹은 5군단 부군단장으로 보직 이동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만 나오고 있다. 그런데 2014년 6월 25일 [[조선중앙방송]] 보도에서 "인민무력부장인 조선인민군 육군대장 현영철 동지"로 언급되면서 그 사이에 대장 재진급과 함께 인민무력부장 취임이 확인되었다. [[http://daily.hankooki.com/lpage/politics/201406/dh20140625190311137590.htm|김정은, 왜 인민무력부장 자주 바꿀까]] 2014년 7월, [[전병호(1926)|전병호]]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4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66주년 중앙보고대회에 참가했으며 2014년 9월 25일, 최고인민회의 13기 2차 회의에서 전임 인민무력부장 [[장정남]]을 대신하여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2014년 11월 8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237050|예방했다]]. 일각에서는 현영철이 정치국 위원으로까지 승진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하지만 통일부는 이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실제로 현영철의 보도 서열을 보면 정치국 위원인 김기남, 최태복보다도 높았다. 하지만 이는 김정일 시대에 선군정치가 도입되면서 당내 서열과 무관하게 장군들이 정치국 위원들보다 높은 서열을 차지하는 관행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중앙위원회 위원 수준이었던 장정남이나 정치국 후보위원 리영길도 각각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이었기 때문에 정치국 위원들보다 높은 서열을 받았다. 어쨌거나 김정은 시대의 중견군인으로 잘 나가나 싶었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