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영민 (문단 편집) === [[울산 현대]] 2기 === 2006년 말 러시아 시즌이 끝나고 12월 초에 결혼식을 위해 귀국했을 때, [[김정남(축구인)|김정남]] 감독과 대화를 통해 울산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제니트는 1년 더 남아주길 바랐는데, 러시아로 출국해 구단과 협상 후, '''사비로 이적료를 내고''' 제니트와 계약을 해지하고 울산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2007 시즌 개막 전, 친정 팀 [[울산 현대]]로 복귀했다. 울산에서 본격적인 전성기 기량을 맞이했다. 팀에 복귀하자 마자 [[K리그 리그컵|삼성 하우젠컵 2007]] 우승에 기여했고, 팀의 정규리그 3위에 기여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 [[동해안 더비]]에서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리그 25경기 3도움, 리그컵 10경기 1도움, FA컵 3경기 1도움. 2008년에는 팀의 리그 4위에 기여했다. 주장단으로 팀을 이끌었다. 주장 완장을 달고 나섰던 9월 20일 성남과의 리그 경기 이후 부상을 당해 약 2달 동안 결장했다.플레이오프에서 FC 서울에게 패하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리그 20경기 5도움, 리그컵 10경기 1도움, FA컵 2경기 1도움. [[김호곤]]이 새롭게 감독으로 부임한 2009 시즌을 앞두고 J리그 팀의 오퍼가 았었지만, 팀과 3년 재계약을 맺었다. 팀은 리그 8위로 부진하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 FA컵 32강, 리그컵 4강, ACL 조별 탈락 등 김호곤 1년 차에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도 본인 커리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만개한 기량을 보였다. 리그 26경기 9도움, 리그컵 4경기 1골 1도움, FA컵 1경기 1도움, ACL 5경기 1도움. 2009 시즌이 끝나기 마지막 날, 김호곤 감독과 개인 면담을 통해 팀이 센터백을 구하는데, 그 트레이드 카드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원 클럽 플레이어|원클럽맨]]을 목표로 하던 선수에게 말 그대로 청천벽력같은 소리. 결국 약 7년 간 헌신한 울산과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