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무 (문단 편집) === 당대 이후 === [[당나라]] 때 무당산을 근거지로 성립된 도교의 [[무당파]]는 기존의 [[원시천존]]을 대체해 [[현천상제]](玄天上帝)라는 주신을 모시며 신앙했다. 그들은 [[현천상제]]가 무당산에서 득도해 [[북극성]]으로 올라가 [[북두칠성]]을 다스리며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절대자라고 믿었다.[*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34781]]] 현천상제는 훗날 체계화된 현무 신앙의 중핵으로 자리잡게 된다. [[북송]] 때부터는 현무가 명실공히 [[사신(신화)|사신]]들 중 가장 중요한 위치로 발돋움한다. 그 계기는 송이 요와 싸우다 전연의 맹약을 통해 굴욕을 겪으면서부터 북방의 지리적 방위성이 부각되어 수호신인 현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사실 중국이 북방의 위협에 직면한 것은 이미 훨씬 오래전 [[진(통일왕조)|진]]나라 무렵부터이므로 이 이론에 기초하면 그 전부터 현무가 국방에 중요한 위치를 점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만은 없다. 아무튼 [[북송]]은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에서의 현무 숭상 흔적을 남긴다. 송나라 조씨의 시조라는 [[조현랑]]과 같은 종교적인 표상화에 착수하였으며 현무를 신격화한 도교경전 중 대표적인 '진무경' 역시 송나라 때 물건이다. 진무경의 진무(眞武)는 현무를 가리킨다. 조현랑을 송나라 조씨의 시조라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피휘]]하느라 현무를 진무라 쓴 것이다. 이 진무경에서도 현무는 북방의 영험한 장군이라 묘사한다. 여기에 송나라는 현무에게 봉호로서 '진군'이란 칭호를 추증했다. 여기서 진군은 전형적인 도교식 봉호다. 송을 이은 [[원나라]] 역시 현무를 중요시하여 '상제', '대제' 칭호를 추증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원을 건설한 [[몽골인|몽골족]]이 북방의 수호신인 현무를 몹시 경외했다는 추측 등이 있다. 원을 이은 [[명나라]] 또한 현무를 대단히 중요시하여 무당산에 거대한 도관을 설립하고 현무에게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명의 기틀을 확립한 [[영락제]]가 북방 번왕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 등이 있다. 또한 명대에 완성된 [[만리장성]] 등으로 미루어 당대에 현무가 지키는 북방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지 않았을까 추측되기도 한다. 실제로 명은 [[오삼계]]가 만리장성의 산해관을 내주는 바람에 북으로부터 밀고 들어온 만주족의 [[청나라]]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북극진무현천상제(北極眞武玄天上帝)라는 [[이명]][* 그 밖에 현무대제, 진무제군, 상제야 등의 이명도 있다.]이 확립 내지는 동일 시 되었으며 그 신앙의 중핵인 무당산은 도교의 성지가 되었다. 현무가 사방신 중 위상면에서 우위에 서 있는 것 또한 오행의 영향이 아니라 방위의 영향. 고만고만했던 다른 세 방위들과 다르게 북방은 언제나 침략에 시달려야 했고, 또한 애초에 중국의 사상 상 북방이 가장 중요시 된 방위였기 때문에 현무가 이들 중 가장 위상이 높아진 것. 또한 현무의 전(戰)신, 무(武)신적 성격은 이러한 방위가 아니라 현무가 맡은 계절(冬)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겨울은 혹독함의 계절이자 그 혹독함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상징하는 계절이었다.] 가진 이름(武)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따라 붙은 것으로, 딱히 오행이나 방위와도 상관이 없다. 물론, 현무가 맡은 방위가 북방이라는 점이 현무의 무신화에 기여했을 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사방신들중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를 가진 신수를 뽑으라면 가장 중요시 되는 방위인 북방을 수호하고 강인함의 상징인 겨울을 다스리며 그 이름상 무신적 성격을 가지게 된 현무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