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명관 (문단 편집) ==== 삼성그룹 ==== 호텔신라 이후 이건희는 현명관을 삼성시계[* 일본 세이코와 합작으로 나름 국내 손목시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적도 있으나 해외 브랜드에 밀리고 당시 30개 계열사중에 매출 꼴찌로 1997년 외환위기때 계열사에서 분리되어 현재는 SWC라는 기업으로 독립경영을 한다.] 대표이사 사장직으로 보내는데, 좌천과 다름없었다. 삼성시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된 현명관은 실무 시작과 동시에 대수술을 단행했는데, 서울 태평로에 있는 삼성그룹 사옥 내에서 삼성시계 본사를 [[성남]]으로 이전하고, 구미사업장 역시 같이 이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표이사 자신의 월급을 자진삭감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재무구조를 좋게 만들었지만, 세이코와의 기술제휴 문제에서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하여서 처음으로 이건희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3년 이건희는 그룹 내에 중요 사장단을 모두 LA로 호출하게 되는데,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전에 있었던 LA 가전제품 비교였다.[* 미국에 출장갔던 이건희가 도시바나 소니등의 제품은 잘팔리는데, 삼성제품은 구석에 먼지쌓이는 곳이 있다 해서 빡쳐서 사장단을 모두 호출해서 직접 비교하라고 시킨 일이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면서 이건희의 지시사항으로 사장단에게 녹음 파일을 전당했는데, 그게 바로 '''티스푼 사건''''이었다. 이건희가 품질경영을 주장했을때, 당시 비서실장이던 [[이수빈(기업인)|이수빈]]이 '질적 품질성장도 중요하지만, 양과 질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라는 말에 현명관을 포함해 다른 사장단들도 '''아 비서실장이 정말 충언을 하는구나. 그래 저런 말을 해야지.'''라고 이수빈을 칭찬할때, 이건희가 격노해서 티스푼을 던져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그대로 녹음됐다고 한다.[* 이전까지 이건희 티스푼 사건은 그냥 언론사에서 떠드는 이야기라는 말이 많았는데, 직접 들은 사장단들이 인정한 사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칭찬하던 [[이수빈(기업인)|이수빈]] 비서실장이 좌천된 이후 역으로 현명관 본인이 이수빈의 후임으로 삼성그룹 비서실장 자리에 임명됐다고 한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삼성그룹의 공채가 아닌 타 출신이니 이리저리 인맥에 휘둘리지 않으니 그 자리에 임명한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3년간 비서실에서 근무한 뒤 후임인 [[이학수]]에게 비서실장 자리를 넘기고,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의 자리에 앉게되었으며 삼성 내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는 [[이수빈]], [[권오현]]에 이은 몇 안되는 회장 직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 구단주 대행을 하다가, [[김응용]]을 영입하고, 드라마틱한 준우승으로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으로 이건희는 정식 구단주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2년에 드디어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2008년 삼성그룹 이건희 비자금 문제에서, 자신이 이건희의 개인 비자금으로 삼성생명 28만주에 대한 존재를 검찰조사에서 실토하고, 고문 활동을 하다가 2010년 자신이 몸담은 삼성을 떠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