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제철 (문단 편집) === 21세기 === [youtube(qmmycWL3QcQ)] IMF 이후부터 부실화되거나 일시적인 경영난을 겪은 중소철강사들을 공격적으로 합병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 3월에는 국내 주요 압연형강 생산업체인 [[강원산업]]을 합병하여 형강업계의 독보적인 1인자로 군림하였다. 동년 9월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돼 [[현대자동차그룹|현대-기아자동차그룹]]으로 편입됐고, 2001년 7월부터 'INI스틸'로 사명을 바꾸고 12월에는 삼미특수강(주)을 인수하였다. 2004년에는 [[한보철강공업]] 당진제철소를 [[현대하이스코]]와 공동으로 인수하여 당진에서 미니밀에 의한 열연 코일 생산을 시작하였다.[* 단, 한보철강의 코렉스 제철설비는 가동하지 않고 해외 매각하였으므로 당시로서는 아직 일관제철업체가 아니었다.] 이 합병으로 인해 INI스틸은 3~4위와의 격차를 훌쩍 벌린 명실공히 2위 철강기업의 규모를 갖추었으며, 당시 조강 생산 능력은 약 1,000만톤에 달했다. 이는 전기로/미니밀 only 철강업체 가운데서는 미국 Nucor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였다. 2006년 3월에 현 사명으로 개칭 후 2013년 현대하이스코로부터 냉연제품 제조/판매사업부문을 넘겨받았으며, 2015년에는 현대하이스코를 완전 흡수 합병함에 따라 시총 20조원의 거대 철강회사로 재탄생했다. 연이어 그룹 차원의 위기를 겪는 [[동부그룹]]과 [[SPP조선|SPP그룹]]에서 동부특수강 인수를 마무리하여 [[현대종합특수강]]으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SPP율촌에너지 단조 부문을 인수하였다. 현대그룹이 계열분리되기 전부터 건설ㆍ자동차ㆍ조선 등 계열사에서 소비되는 막대한 양의 철강재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철을 소비한 기업이 현대였고[* 자동차용 강판을 쓰는 국내 자동차 1위 업체 [[현대자동차]], 선박용 후판을 쓰는 국내 조선업 1위 업체 [[현대중공업]], 철근 등을 자재로 쓰는 [[현대건설]]이 [[현대그룹|한 식구]]였던 시절이다.] 그 철의 공급선은 대부분 포항제철이었다. 거의 포항제철이 목줄을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현대가 100만 톤이 필요하다고 해도 포철이 90만 톤 밖에 공급할 수 없다고 버티면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공급선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로인한 손실과 포스코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황을 타개할 필요가 있었다. 자체적인 제철소 건립은 경쟁사 포스코와 박태준의 견제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현대그룹은 1977년 제2종합제철소 설립계획을 정부에 제출했으나 탈락하였고, 그 사업권은 포스코에 넘어가 광양제철소가 지어졌다. 1994년 제3종합제철소 설립노력 역시 철강의 과잉공급을 이유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정주영이 출마하여 보수표를 잠식한데 따른 [[김영삼 정부]]의 현대그룹 탄압이라는 설이 있다.] 좌절되었다. 그리고 새로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 정몽구 또한 [[경상남도]] [[하동군]]에 제철소 건립 추진에 들어갔으나 곧바로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국내 시장에서 선박용후판, 자동차용강판 등 고로에서 제작하는 철강재는 포항제철이 독점공급하기 때문에 현대그룹 뿐만이 아니라 다른 철강소모업체들은 포항제철에서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항제철의 물량 배정은 철강소비업체들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4450741|통제수단]]이 되었다. 물론 포항제철의 공급량이 이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기에 모자라는 부분은 소비업체들이 전세계를 뒤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0000988|구해와야 했다.]] 현대그룹 역시 일본 등 해외에서 철강을 들여오고, 이 와중에 포항제철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0301672|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0301843|2]][[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0072457|3]][[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0048430|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0324281|5]][[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0355007|6]]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후 [[포스코]] 및 수입에만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차량용 열연코일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2006년 10월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을 시작했고, 2010년 1월 5일 고로(용광로) 화입식을 갖고 가동을 개시했다. 이로써 현대제철은 대한민국에서는 드물게 일관제철소를 보유한 열연판재 생산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당진제철소의 경우 분진을 막기 위해 돔형 구조물에 철강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점 등 기존의 제철소에 비해 친환경적인 구조를 한다는 듯.[* 설계 및 시공은 전부 현대자동차그룹의 건설부문 계열사 엠코에서 맡았다.] 2013년 9월 13일 제3고로 화입식을 기점으로 고로 3기 가동체제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고로 생산능력이 연산 1,200만톤이 되었다. 참고로, 당진제철소는 부지 조성 초기부터 4개의 고로를 둘 수 있게 설계됐기 때문에, 향후 연산 능력 증대를 위한 4고로 추가 공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당진제철소 사무직을 제외한 현장직 교대근무 기준 3년차 세전 연봉은 9천만 원 이상 달한다. 거기다 상여금을 월급에 녹임으로써 최근 신입 현장직 기준 연봉 7천만원에 도달했다. 대한민국 대기업 공기업 TOP5 회사들만 시행하고있는 4조2교대(이틀마다 근무)를 똑같이 시행시킴에따라 당진 노동조합 인원들의 90%가 이틀마다근무하는 현 체제로 유지하며 4조3교대로 원복하기 싫다는 의견이 80%이다 2019년 4월에는 자동차용 철강 솔루션 브랜드 H-SOLUTION을 출시했으며 2020년 3월에는 금속 주조 및 자유단조 사업부문을 빼내 '현대IFC'로 출범시켰다. 2021년 정부는 현대제철에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고,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까지 제기하여 승소했으나 현대제철은 직접고용대신 자회사 현대ITC(당진), 현대IMC(포항), 현대ISC(인천)를 설립하였고 최근에 현대제철 순천 단조공장의 비정규직 사원들을 현대IFC으로 고용하였고 울산공장 비정규직 인원들 현대스틸파이프를 설립하여 고용하였다. 이들은 정규직 연봉의 80%만 주고 오히려 덩치만 커진 협력업체 --인력파견업체-- 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자회사들의 매출을보면 고용 인원수와 매출액이 같다. 사실상 이런 자회사 인원들은 소송을 포기하고 직영이 되지않는 조건으로 재입사 된 것이고 당진,포항,인천은 자체설비를 보유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직영이 될 수 없다. 다만, 순천단조공장과 울산공장은 자회사 자체 설비이기때문에 기존의 ITC,IMC,ISC 직원들과는 개념이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