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자동차 (문단 편집) === 현대자동차그룹으로 === 1999년 [[현대정공]] 자동차부문[* [[현대 갤로퍼]], [[현대 싼타모]]를 생산하던 곳이다.]과 [[현대자동차써비스]]를 합병했고,[* 두 회사 모두 원래부터 정몽구가 경영하던 회사들이다. 현대자동차는 정세영이 운영하고 있으니 자동차사업에 진출하고 싶었던 정몽구가 현대그룹의 인프라를 활용(현대차의 인적자원과 현대차의 기술합작선인 미쓰비시자동차와의 기술협력 등)하여 별도로 만든회사다. 현대자동차를 차지한 이상 별도 법인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합병했다.] 같은 해 2002 한일월드컵 및 유로 2000 후원사로 선정돼 세계적으로 위상을 드높였다. [[2000년]] [[8월]] 다른 계열사 9개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재의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하였다. 본사 등기도 그 해 12월에 양재동으로 이전하면서 현대그룹과 분리되었다. 2001년 7월, '''현대자동차'''와 [[다임러 AG]]가 상용차 부문에서 합작을 추진해 '[[다임러 현대 상용차 주식회사]]'를 합자법인으로 설립했다. 그러나 다임러 AG와 현대자동차의 의견 차이로 인해 3년도 채 못가서 2004년에 갈라섰고, 주식회사 법인은 청산 및 합작이 무산되었다.[* 다임러와 현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과물은 [[메르세데스-벤츠 OM906 엔진]]을 탑재한 [[글로벌 900]]이었다. 당시엔 [[유럽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할 만한 자체 개발 디젤 엔진이 현대에겐 없었고 [[현대 에어로타운]]에 적용되던 [[히노자동차|히노]]의 [[현대 KK 엔진|KK 엔진]]은 글로벌 900의 거대한 차체를 끌고 가기 버거웠기 때문에, 벤츠 엔진을 사용하기로 추진했다.][* 다임러와 갈라선 이후, 현대자동차는 [[현대 G 엔진|G 엔진]]을 상용화하여 홀로서기를 했다.] 2002년 중국 베이징기차와 합작해 '베이징현대'를 세웠고, 2004년 현대상용엔진을 합병한 후 이듬해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공장을 세워 북미 현지생산을 재개했다. 2009년 [[정몽구]]의 아들인 [[정의선]]이 부회장에 취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