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종(조선) (문단 편집) == 개요 == [[조선]] 제24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묘호]]는 '헌종(憲宗)', [[시호]]는 '경문위무명인철효성황제(經文緯武明仁哲孝成皇帝)', [[휘]]는 '환(烉)',[* [[명종(조선)|명종]]도 휘가 ''''환''''이지만, 명종은 '큰 산 환([[峘]])'이고 헌종은 '불꽃 환([[烉]])'이다. [[사도세자|장조]]의 현손 항렬 대에서는 이름에 '어진사람 인(儿)'이 들어간 글자를 공유한다. [[정조(조선)|정조]]의 증손인 [[헌종(조선)|헌종]]은 '환('''烉''')'으로 안에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고종(대한제국)|고종]]은 '형('''㷗''')'으로 좌우로 밖에 나뉘어 있으며, 초명 '재황(載'''晃''')'에는 '황(晃)'의 밑에 발의 형태로 들어가있다. [[은언군]]의 증손인 [[덕안군]]은 '재덕(載'''悳''')', [[청안군]]은 '재순(載'''純''')'으로 파자하지 않으면 잘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은신군]]과 [[은전군]]의 증손으로 [[완림군]]은 '재원(載'''元''')', [[완순군]]은 '재완(載'''完''')', [[완영군]]은 '재긍(載'''兢''')', [[흥친왕]]은 '재면(載'''冕''')', [[완은군]]은 '재선(載'''先''')', [[인양군]]은 '재근(載'''覲''')', [[의양군]]은 '재각(載'''覺''')', [[예양정]]은 '재규(載'''規''')'로, 고종의 초명과 마찬가지로 발의 형태로 온전히 들어가있다. [[완평군]]의 둘째 아들 '재현(載'''現''')'은 본가의 양자로 들어가 황실 종친 자격을 잃었지만 이름자에 '儿'은 그대로 있다. 유일하게 [[경은군]] '재성(載星)'이 규칙을 적용받지 않았는데, [[서자]]인데다 작호를 받은 게 굉장히 늦은 시기다. 저 중 헌종을 제외하고 장조의 실제 혈통을 물려받은 사람은 유일하게 저 규칙을 사용하지 않은 이재성 뿐이라는 것이다.(나머지는 전부 입양을 통해 족보상 후손이 된 경우이다.)] [[자(이름)|자]]는 '문응(文應)'. [[순조]]의 유일한 친손자이자 [[효명세자]]의 하나뿐인 외아들[* [[효명세자]]도 사실상 [[순조]]의 외아들이었고(둘째 아들은 봉군되기도 전에 [[요절]]), 순조도 [[문효세자]]가 어려서 죽은 후 [[정조(조선)|정조]]의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헌종은 드물게도 왕인데 3대 독자 포지션.]로 아버지인 효명세자가 22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요절]]하고, 할아버지 순조마저 건강 악화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황태손|왕세손]](王世孫)의 신분으로 8살 어린 나이에 국왕이 되었는데 조선 왕으로서는 최연소로 [[단종(조선)|단종]]보다도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이와 대조되게 가장 최고령으로 즉위한 군주는 [[태조(조선)|태조 이성계]]로 즉위 당시 나이가 58세였다.] 같은 경우로는 [[고려시대]]의 [[충목왕]]이 있으며, 충목왕 역시 즉위 당시 8살(만 7살)이자 최연소였다. [[영조]]-[[정조(조선)|정조]]에 이어서 2번째로 조부에서 손자로 권좌가 이어지는 조손(할아버지 → 손자) 계승의 절차를 밟았다. 기존 학계의 견해에 따르면 헌종조 전반은 [[풍양 조씨]]와 [[신 안동 김씨|안동 김씨]] 간의 알력다툼이 치열했던 시기로 정의되며 그에 따른 [[야사(역사)|야사]]도 존재했으나, 이는 실제 역사와 차이가 있다.[* 실제로 헌종은 세도정치가 만연한 조선 말기 때 유일하게 이를 혁파하고자 노력했던 마지막 개혁 군주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