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성자열황후 (문단 편집) === 광종 시기 === 순희 16년(1189년), 효종은 황태자인 조돈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오씨는 아직 태황태후를 칭하지 않았고[* 효종이 살아있었기에 효종의 계후인 [[성숙황후]]가 황태후를 칭하지 못하고 상황후를 칭했기에 그랬다.], 광종으로부터 수성황태후라는 존호를 받았다. 오씨는 소희 4년(1193년)에 수성융자비복황태후(壽聖隆慈備福皇太后)라는 존호를 받았다. 광종이 황제로 재위하는 동안, 황후인 [[자의황후]]는 광종과 효종 사이를 이간질했고, 광종과 효종은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결국 효종은 1194년에 세상을 떠났고 오씨는 태황태후가 되어 이 시기에 잠시 수렴청정을 하였다. 광종이 자의황후에게 휘둘리고 정신질환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부친의 상을 주관하지 않자, 대신들은 태황태후인 오씨에게 광종의 폐위를 건의하였다. 오씨는 광종이 제정신이 아니며 황제로서의 업무조차 수행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고는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폐위를 결정한다. 그러면서 남송의 재상이었던 [[조여우]]와 [[한탁주]]가 후계자 후보로 광종의 조카인 조병을 내세웠는데, 황태후는 광종의 아들인 가왕 조확을 선택하였고, 결국 조확을 황제로 즉위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