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덕왕 (문단 편집) === 부정적 평가 === [[조카]]이자 [[개혁]]을 실시하려던 애장왕을 [[시해]]하는 방식의 [[쿠데타]]를 통한 [[정통성]]없는 집권을 한 건 큰 문제였다. 앞서 설명했듯 군사적 개혁을 통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건 크게 칭찬해줄만하지만, 애장왕이 추진하던 개혁이 성공했다면 아예 그럴 경우조차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역사 애호가 입장에서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조카처럼 뚜렷한 [[정치]]적 목표나 동기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매진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연이은 자연 재해와 기근에 별 책임감 없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문제였다. 물론 헌덕왕이 구휼을 벌인 기록은 찾아볼 수가 있지만 오히려 그 와중에도 [[잔치]]나 벌여대며 '''왕이 손수 [[거문고]]를 타고 놀면서''' 70대의 고위 [[관료]]가 거기에 맞춰 [[춤]]을 추었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기록도 찾아볼 수가 있다.[* 6년(814년) 봄 3월에 숭례전(崇禮殿)에서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즐거움에 극에 달하자 왕이 거문고를 타고 이찬 충영(忠榮)이 춤을 추었다. - 《[[삼국사기]]》 <헌덕왕 본기>] 임금이 이 모양 이 꼴이니 구휼을 벌인다 해도 민생에는 도움이 1도 안 된 것이야 당연지사. 특히 후계자이자 동생인 [[흥덕왕]]이 '''직접 지방을 순시하며 구휼 활동을 열심히 벌인 것'''과도 크게 대조된다. 그 와중에 [[김헌창]], 김범문 부자의 난까지 연달아 터지는 가운데 연이은 천재지변마저 발생하며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도적]]들이 크게 창궐하는 등 가뜩이나 혼란스럽던 신라 하대의 혼란은 더더욱 심해져만 간다. 신라 해적([[신라구]])이 나타나 [[일본]] 서부까지 노략질하고 신라인들이 신라와 [[중국]] 해적들에게 붙잡혀 [[당나라]]나 일본에 [[노예]]로 인신매매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로 당시의 민생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다음의 기록이 잘 말해준다. > (헌덕왕) 13년(821년) 봄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손을 팔아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다. - 《[[삼국사기]]》 <헌덕왕 본기> 다만 나라 말아먹은 암군으로 보기엔 종심 방어 체제 구축의 공로가 워낙 크기에[* 헌덕왕 혼자 한 게 아니고 헌강왕 때까지 역대 신라 임금들이 틈만 나면 구축하려는 했으나] 그건 어렵다고 보는 측도 있다. 그러나 여러모로 신기할 정도로 말기에 흔히 암군들이 줄줄이 나타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라 후기 임금들은 다들 괜찮은 편이며, 그중에서는 여러모로 모자라 보이는 게 맞는 것 또한 사실. 게다가 잘 했다는 그 종심 방어 체계도 [[장보고]]의 [[달벌대전]] 한 방에 깨져버리고, 60년 후 [[견훤]]의 [[서라벌]] 유린으로 끝나버려서 헌덕왕의 군사 개혁은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끝나버렸다. [[혜공왕]]조차 친정 이후 직접 정치를 펼치기 위해 국학에 나가 [[강의]]를 듣거나 조상인 [[문무왕]]의 사당에 참배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다. 그러나 헌덕왕은 조카를 시해하고는 충분히 정사를 돌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놀고 먹는 데만 할애하셨으니 자연스레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 헌덕왕이 애장왕을 시해하는 바람에 개혁도 취소되고 신라 부흥도 물거품이 되었으며 헌덕왕의 집권을 시작으로 해서 신라가 본격적으로 [[국가 막장 테크]]를 타기 시작한 것을 보면 헌덕왕이야말로 '''진정한 신라 멸망의 [[원흉]]'''일지 모른다. 다만 상술했듯 '서라벌이 혹시.....?'라는 경각심을 품고 방어 체제 구축을 시작하였으니, 난세는 만들었으되 그 난세를 버틸 장치 또한 마련해줬다고 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집권 과정에서 예영계를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후대에 펼쳐진 친족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왕위 쟁탈전을 벌이게 한 건 옹호의 여지가 없는 순수 본인 책임이다. 또한 방어체계라는 것도 헌덕왕 사후 30년도 안 돼 [[장보고]]한테 깨졌으니 헌덕왕은 그냥 신라를 말아먹은 암군이라 볼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