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덕왕 (문단 편집) === 즉위 이전 === 790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791년 김제공의 난을 진압했으며, 할아버지 원성왕에 의해 794년 [[시중]]으로 임명되었다. 795년 [[이찬]]으로 [[재상]]이 되었고 796년 [[병부령]]을 제수받기도 하여 원성왕 말기에 이미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원성왕의 정치가 원성왕의 직계 [[왕족]]들 중심의 측근 정치이기도 했다. 원성왕의 아들 김인겸과 손자 소성왕이 모두 일찍 죽자 어린 애장왕의 즉위와 함께 [[섭정]]이 되었고, [[상대등]]에 올랐다. 애장왕 대에 김언승의 세력은 상당했는데 김언승을 지원하는 [[흥덕왕|아우 김수종]]이 시중에 올라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러한 세력을 바탕으로 809년 아우 김수종(혹은 다른 아우 김제옹이 더 유력하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애장왕을 시해한 뒤 애장왕을 보필하던 동생 김체명의 목숨마저 빼앗고는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헌덕왕은 당나라의 [[황제]]인 [[헌종(당)|헌종]]에게는 애장왕이 병사했다고 [[거짓]] 보고를 올렸다. 물론 그대로 알렸다면 당나라 측에서 시비를 걸 수도 있었던 걸 감안한 조치겠지만 인륜적으로 보면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