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참 (문단 편집) == 생애 ==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드라마]]에 심취하여 [[성우]] 흉내로 사람들을 웃기는데 능했고,[* 특히 [[동양방송|TBC]] '''광복 20년'''의 [[조병옥]] 역할과 [[MBC]] '''전설따라 삼천리''' 해설로 유명한 성우 [[류기현]]의 흉내를 잘 냈다고 한다.] 학창시절 다니던 웅변학원[* 사실 허참의 부모님은 그를 [[정치인]]으로 키우고 싶어서 웅변학원에 보낸 것이었다.]에서 발음법과 발성법, 화술을 배우면서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갖게 되었다. 1970년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한 허참은 이등병 때부터 부대 웅변대회에서 1등을 따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문화선전대]] 진행요원으로 뽑혔고 군 생활 내내 위문공연 [[MC]]로 활동했다. 1973년 전역 후 방송인이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허참[* 이 때 성공하면 갚겠다면서 여동생이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3만 원을 빌려 서울에 왔다고 한다.]은 처음엔 군대나 고향 친구 집을 떠돌다가 [[중구(서울특별시)|중구]] [[중구(서울특별시)/행정#s-5|정동]]에 있는 [[문화방송]](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친구 집에 더부살이로 정착하여 채소나 생선 배달 등 잡일로 생계를 꾸리며 방송국 부근에서 계속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군대 친구와 종로에 놀러간 허참은 당시 [[이종환(방송인)|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 들렀다가[* 마침 그날 쉘부르에선 [[오란씨]] 무료시음 행사를 하고 있어서 허참은 목이나 축이자는 생각에 들어간 것이었다.] 통기타 그룹 '''쉐그린''' 공연 후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어 무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선대 MC 3년 경력을 살려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보일 정도로 입담을 과시하여 무대의 가수들과 관객들을 배꼽잡게 만들었다. 허참의 말솜씨에 감탄한 쉐그린 멤버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라고 묻자 허참은 "아... 기억이 안납니다" 라며 능청을 떨었고, "'''허 참''',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는 면박에 재치있게 "아 그래요, 제 이름이 바로 '''허참'''입니다" 라고 받아치면서 클럽 안의 사람들을 전부 빵 터뜨렸다. 이것이 부산 청년 '''이상룡'''이 '''허참'''이란 예명을 쓰게 된 계기였다.[* 일설에는 누군가가 허참의 진행 능력을 보고 "허 참 정말 진행 잘하는구만"이라고 말한 걸 전해듣고 예명으로 삼았다는 말도 있다.] 허참의 재능을 알아본 이종환은 그를 쉘부르의 MC 겸 DJ로 채용하여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나중엔 '''허참 쇼''' 라는 자신만의 쇼를 열어 매번 쉘부르 입장권이 동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종환은 허참에게 정해진 급여 같은것은 주지 않고 숙식 제공으로 때웠다고 한다.] 결국 1974년, 쉘부르의 손님으로 그를 지켜보던 당시 MBC PD 겸 DJ '''박원웅'''[* 1940~2017.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디스크 쇼 DJ로 이름이 높았다.]이 허참을 새 라디오 프로그램 '''청춘은 즐거워''' MC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MBC 라디오의 MC와 DJ로 활약하던 허참은 1976년 경 MBC 내 모든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아나운서]]로 교체한다는 방침으로 일자리를 잃고 신발 장사를 하는 등 잠시 방송계를 떠났다가 [[동양방송|TBC]]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적하여 '''7대 가수쇼''' MC로 TV 무대에 진출했고, 그 이듬해인 1977년부터 TBC의 간판 쇼 프로 '''[[쇼쇼쇼]]'''의 MC를 맡으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MC로 떠오르게 된다.[*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으로 TBC가 사라지고 [[KBS]]로 채널을 옮겨 1983년 종영할 때 까지 쇼쇼쇼의 MC를 맡았다. 참고로 이전 MC는 초대 [[곽규석]](코미디언, 예명 후라이보이)-2대 이한필(가수, 예명 위키 리, [[전국노래자랑]] MC 경력도 있다), [[정윤희]]였고, 허참이 3대이자 마지막 MC였다. 허참의 대표적인 파트너는 [[정소녀]]였다.] 그 외에 [[동아방송|DBS]]의 '''허참과 이 밤을''' 등의 MC로도 활동했다. 80년대 KBS 시절은 반 개그맨 + 반 진행자 포지션이어서 코미디 프로그램의 꽁트도 상당히 많이 출연했었다. 가족오락관을 하면서도 종종 개그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진행자 이미지에 나이도 30대였기에 망가지는 쪽 말고 망가지는 20대 후배 개그맨들을 극중에서 말리다가 당하는 역할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