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준(드라마)/등장인물 (문단 편집) ==== 삼적([[정욱(1938)|정욱]] 扮) ==== 승려이자 유의태의 얼마 없는 벗 중 한 명[*A 원작에서는 안광익도 유의태의 절친으로 유의태, 김민세, 안광익 3인방이 어울리지만 드라마판에선 유의태와 안광익은 면식이 없고 김민세의 소개로 알게 된다.]. 삼적은 법명이고 본명은 김민세다.[* 극중에서는 "대사님"으로 주로 불리고, 유의태는 "삼적"이라고 지칭한다. 본명인 김민세로 부르는 사람은 처남인 안광익과, 과거 회상을 했을 때의 양예수가 유이하다.] 유의태와 같이 의과시험을 보러갈 때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환자를 외면하고 그대로 의과 시험을 보러간다. 이후 동궁전 세자[* 아마도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일 확률이 높다. 김민세와 안광익이 내의원에서 종사하던 것이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인데, 1999년판 기준 1회가 선조 1년(1568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순회세자가 4년 전에 세상을 떠났음을 고려하면 작중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는 시간(안광익이 남긴 의서로 공부하면서 몇 년이 지나가는 묘사가 있다)을 포함해야 과거 이야기와 맞는다.]의 병을 낫게 하면서 어의 양예수의 신임을 받고 승승장구한다. 원작에서는 첫 등장이 취재에서 낙방한 유의태가 양예수에게 구침지희 대결을 벌일 때 참관하는 의원 중 한명으로 첫 등장이며 구침지희에서 이긴 유의태에게 충격을 받았고 출가한 이후 만나 교우를 맺게 된다. 양예수의 후계자로 양예수가 유의태를 낙방시킨 것도 김민세를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다만 양예수가 유의태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도지에게 감정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김응택이 양예수의 마음에 들기위해 중간에서 손을 쓴것.) 여튼 이후 전개는 동일하여 어느 날 7살짜리 아들인 상화가 실종된다. 그리고 실종되기 전에 마을에 문둥병자들이 지나갔다는 소문에 [[나병]]환자촌으로 갔다가, 상화를 잡아먹은 나병환자 일가족을 참살하고 만다.[* 이 나병환자 일가족이 사는 움막에 상화의 비단신이 있었고, [[어린아이 간 빼먹기|나병환자들이 어린 아이의 간을 먹는다는]] 소문을 떠올린 김민세는 이들에게 아들이 어딨냐고 추궁하지만 이들은 대답하지 않고 눈물만을 흘리며 부둥켜 안는다. 아들이 이들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것도 모자라 잡아먹혔음을 직감한 김민세는 그만 이성을 잃고 농가에 있던 갈퀴를 집어들어 일가족을 [[끔살]]한다. 원작에서는 확실하게 이들이 상화를 죽이고 잡아먹은 것으로 나와있었고 1999년 버전에서도 그렇다는 암시를 하고 있으나 더 나중에 방영된 [[구암 허준]]에서는 아무래도 시대가 바뀌었고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친아들 상화는 [[익사]], 즉 사고로 죽었고 이들을 살해한 것은 [[오해]]로 인한 비극이었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후 그 나병가족 중 살아남은 길상이라는 사내아이를 데려와[* 상화가 입었던 옷을 이 소년이 입고 있었다. 자신은 아버지가 잡아온 인육을 먹기를 거부하고 가물치를 잡아 병을 고치려 한다고 김민세에게 울면서 해명한다. 상화의 옷은 아버지가 입으라고 던져준 것이었다고. 이 길상이라는 소년이 과연 상화를 먹는데 동참했는지에 대해선 원작이나 드라마에서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과 같은 '상화'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양자로 키우려 하지만, 아내[* 안광익의 여동생. 1999년 버전에서는 이름이 여옥으로 나온다. 원작에서는 안광익의 아내인 궁녀 정씨의 언니로 나온다.]마저 모든 사실을 알고 나자 충격에 목을 매 [[자살]]하면서[* 원작에선 제정신을 잃고 자기 집에 있는 우물에 몸을 던져 죽는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이후 자신이 죽인 일가족의 무덤 앞에서 속죄의 의미로 평생 나병과 싸우겠다고 결의를 한 뒤, 내의원을 그만두고[* 양예수가 그따위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 좀 죽인 죄는 자신이 책임지고 벗겨주겠다고 간곡히 말리지만 전혀 듣지 않는다. 양예수도 김민세가 유의태의 친우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미련을 버린다. 실제로도 [[조선]]의 법 체계상 아무리 중인출신의 잡과 급제자라 하더라도 엄연히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의 아들을 납치해 잡아먹었으면, 그로인해 분노한 관리가 문둥병자들을 몰살한건 [[정당방위]]를 넘어서 당하관인 양예수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 지역의 현령이 바로 수습할수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당시 나병환자들의 이미지(문둥이라 비하하며, 마을에만 내려와도 장정들이 달려들어 때려죽이던)를 생각하면, 무죄를 넘어 자연재해 수준의 [[참척]]을 겪은 비운의 관리로 남았을 것이다.] 전국을 떠돌다 서산대사([[휴정(조선)|휴정]])에게 법명을 받고 출가, 지리산[* 작중에서는 안점산이라고 나온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마안산의 옛 이름. 소설에서는 산음에서 함양까지 30리, 다시 함양에서 북쪽으로 30리를 간다고 나오며, 실제 거리도 그 정도 된다.]에 삼적사라는 산사를 짓고 나병환자들을 모아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한편[* 드라마에서는 삼적사가 우리가 흔히 보는 번듯한 산사가 아니라 산골 조그만 마을처럼 나온다. 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나환자촌. 산을 다니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으로 보아 일반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꽁꽁 숨겨 지은 것 같다. 하긴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당대의 정서상 그냥 둘 리가 없다. 1999년판 방영 당시에도 삼적사 이야기가 나오는 19화(현재의 상화가 삼적의 양자가 된 이야기, 상화가 수연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가 봉변을 당하는 전개가 나온다)에서는 예고 직전에 한센병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자막(아무것도 없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만 떠 있어 섬뜩할 수 있다)을 띄우기도 하였다. 허준이 삼적사를 찾을 때 습격하거나 유의태의 아들이라는 유도지가 와도 그다지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아, 병 때문에 서럽게 살아 온 사람들이라 외부인에게 적대적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처방을 찾긴 한 모양인데 대부분 [[항암제|독초와 독약이 주재료]]라 복용할 경우 환자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복수심을 불태우던 양아들 상화가 수연과 가출했다가 고을 사람들에게 봉변당하고 돌아오자 그 날 밤에 스스로 약을 시험해 보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났다.] 상화는 삼적이 자신과 수연을 위해 스스로 약을 몸에 시험하다가 죽을 뻔 했고 겨우 살아나자 울먹이며 '''아버지'''라고 부르며 화해히게 된다. 유의태가 반위에 걸림을 안 뒤 자신의 양아들 상화[* 삼적대사의 약이 효험이 있었는지 한센병이 완쾌된 모습에다가 전에 처음 등장 할 때의 보이던 살기와 독기가 서린 눈에 이 모든게 빠져 매우 고분고분한 미청년으로 나온다. 문둔병이 완쾌되었으니 세상과 등질 이유가 없기에 의원일을 도울겸 보내기로 한 것.]과 함께 유의태한테 찾아가던 중이었고 이후 친구 안광익을 유의태에게 소개하였으며, 유의태가 밀양 천왕산 얼음골[*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곳이라 자진한 뒤의 부패를 늦출 수 있어서 택한 것 같다.]에서 자진하자 허준, 안광익과 함께 그의 시신을 해부[* 당시 조선에서는 해부는 부모가 물려주신 신체를 훼손한다는 것은 천하의 불효라며 유교사상에 반한다 하여 금기였다. 이는 KBS 드라마 대왕세종 한글창제 에피소드에서도 언급된다.]한다. 이후로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안광익을 통해 상화와 수연을 한양으로 보내 혜민서에서 일하게 하였다는 것과 예진이 내의원을 떠나기 전에 삼적사에 가겠다는 것으로 언급된다. 8의론을 내세우며 환자를 불쌍하게 여기는 궁휼한 마음을 의원의 제일가는 마음으로 꼽으며 허준과 도지에게 가르침을 준다.[* 원작에선 8의론은 유의태가 가르침을 준다.] 이 드라마와 별개로 [[영웅시대]]에서도 전광렬과 관련이 있는데, 각자 이병철(작중 국대호)의 중년과 노년배역을 맡게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