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임 (문단 편집) == 생애 == 허임은 [[전라도]] [[나주시|나주목]](현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장악원(掌樂院) 악공(樂工)이던 아버지 허억복(許億福)[* 이명 허억봉(許億逢, 許億鳳).]과 [[사노비|사비]](私婢)인 어머니 사이의 아들로 [[https://www.yna.co.kr/view/AKR20180829120400054|태어났다]]. 아버지 허억복은 본래 [[강원도]] [[양양군|양양도호부]]에 소속된 관노(官奴)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선조(조선)|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6622&docId=551790&categoryId=46622|김귀영]](金貴榮) 집안의 사노비였다.[[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247A_0060_010_0300_2000_A059_XML|#]] 허임의 7대조는 [[세종(조선)|세종]] 대의 명재상이었던 '송골매' [[허조]](許稠)로 알려져 있으며 허씨 가문이 [[단종(조선)|단종]] 복위 운동과 연루되어 신분이 강등되었다. 허조의 아들 허후(許詡)는 [[세조(조선)|수양대군]]의 권력 찬탈에 반대하다 교형을 당하고 손자 허조(許慥)는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기도하다 발각되어 자결했다. 단종 복위 기도에 연루되어 하양 허씨 문경공파 가문의 직계는 사형을 당하고 “백·숙부(伯叔父)와 형제의 자식들은 먼 지방 잔읍(殘邑)의 노비로 영원히 소속시키라”는 명에 따라 허임의 조상도 [[괴산군|괴산]]으로 부처(付處)되어 관노에 편입된 후 몸종 생활을 전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허준]]이 [[선조(조선)|선조]]에게 "침술은 자신보다 허임이 낫다"라며 추천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실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인듯 보인다. [[임진왜란]] 때에는 [[광해군]]의 분조와 함께 전장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광해군의 신뢰를 받은듯 싶다. 광해군 시절에 신임을 받아 [[남원시|남원]]부사에까지 올랐으며 천출이라는 이유로 대신들의 반대가 거듭되었음에도 크게 중용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관직을 버리고 집필 활동에 힘을 써서 '침구경험방'이라는 서적을 냈는데 당시 [[중국]]과 [[일본]]에 수출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을 [[청나라]]에서 표절한 이가 있어 크게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