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우샤오셴 (문단 편집) === 현대사 3부작과 1990년대 === [[1989년]]에 대만 현대사의 비극 [[2.28 사건]]을 다룬 영화 대만 현대사 3부작 첫 시작인 <[[비정성시]]>를 발표하여 국내외의 찬사를 받았다. <비정성시>는 그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아시아 영화로서는 31년만에 수상하고, [* 1950년 아시아 최초로 서구권 국제영화제 대상인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는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영화)|라쇼몽]]인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라쇼몽 다음으로 39년동안 베네치아 황금사자상을 받은 아시아 영화가 없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80년대 국내 영화 월간지도 '39년만에 수상' 이라고 보도했으며 [[비정성시]] 항목에 링크된 금성비디오 표지에도 39년만의 수상이라고 적혀있는데 사실 1958년 일본 영화 <무호마츠의 일생>(감독: 이나가키 히로시, 1905~1980)이 황금사자상을 받았기에 '31년만의 수상'이 맞다.] [[스크린 선정 20세기 100대 영화]] '''30위'''로 선정되는 등 1980년대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나아가 역대 아시아 최고의 영화로도 손꼽힌다. [[양조위]]는 해당 작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벙어리 사진사를 연기했는데, 대사가 한마디도 없음에도 눈빛 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하는, 신인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국내 영화 팬들에게 양조위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이 벙어리라는 설정은 당시 홍콩 출신으로서 광동어만 죽 써오던 그가 [[민남어]]를 제대로 할 줄 몰라서 허우샤오셴 감독이 그러한 설정을 넣은 것인데, 오히려 양조위의 눈빛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설정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개봉 당시 상영시간이 길다고 40분이 넘게 잘려나가는 탓에 흥행에서 참패했으나 [[비디오]]로 나오면서 잘려나갔던 부분들이 전부 다 나오고 비디오 대여에서 꽤 히트를 친 바 있다. [[1993년]] 대만 현대사 3부작인 <희몽인생>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초청되어, [[칸 영화제/심사위원상|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전통 인형극 장인의 삶을 통해,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순간까지를 다룬 영화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도 선정된 작품이다. [[1995년]]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대만 2.28사건을 다룬 대만 현대사 3부작인 <호남호녀>로 [[제48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받았다. [[1996년]] 감독의 두번째 데뷔작이라고 말하는 <[[남국재견]]>으로 [[제49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현대 대만의 생활을 다룬 영화로 초청 당시에는 기대 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작품성을 재평가를 받은 명작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 잡지 [[카예 뒤 시네마]]에서는 1997년 올해의 영화 2위로 선정하고, 1990년대 결산에서 공동 1위로 선정했다. [[1998년]] [[양조위]], [[이가흔]], [[유가령]]과 함께 한 작품 <[[해상화]]>로 [[제5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19세기 말 상하이의 유곽에 관한 영화로, 이 영화의 전체 쇼트수는 38개로 엄청난 [[롱테이크]]로 이뤄진 영화이기 때문.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부산극장 1관 1300석을 매진시킨 관객들 중 상당수가 매우 괴로워 해야만 했다. 그러나 [[카예 뒤 시네마]]에서는 1998년 올해의 영화 1위로 선정하며, 감독의 영화 미학을 높히 평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