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구연/경력 (문단 편집) === 한일은행(1976~1978) === [[고려대학교]]를 졸업 후 1975년 [[김응용]] 감독이 이끌던 [[한일은행 야구단]][*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전부 [[우리은행]]의 전신이라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4/07/25/1007000000AKR20140725146400002.HTML|우리은행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에 입단했다. '''미사일 타선'''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75년, 1976년 2년 연속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등 실업무대에서 잘 나가는가 싶었는데... 1976년 [[대전광역시]]에서 열린 한일 올스타전에서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때 1·2차전에서는 한국팀의 유일한 타점을 모두 허구연이 기록했다. 그리고 3차전 가던 도중에 꿈자리가 뒤숭숭해 당시 올스타팀 감독이었던 허정규 감독님에게 오늘만 빼달라고 했는데 감독이 "지금 네가 제일 잘치니까 한 타석만 더 서라."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 결과...] 당시 2아웃 주자 1루인 상황에서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유격수가 1루로 던지지 않고 2루로 송구했고, 엉겹결에 2루에서 공을 받은 [[2루수]]인 허구연이 후속 동작을 취하지 못한 와중에 [[일본]] 팀 1루 주자의 거친 [[슬라이딩]]에 받히면서 정강이뼈가 바스라진 부상을 입은 것. 당시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에 재학중이었던 [[김경문]]이 이 경기를 직관하고 있었는데 부딪힐 때 '빡' 소리가 경기장 전체를 울릴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 구급차가 없어서 야전용 들 것에 실려나갔고, 이때 다리가 덜렁거릴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는데, 대전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차안에서 마취를 했음에도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4차례의 수술 끝에 겨우 일상 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회복되었다. 1978년, 재활시스템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잘 뛰지도 못하는 허구연을 [[김응용]] 감독이 대타로 기용했고 그 타석에서 홈런을 쳤는데 그것이 허구연의 마지막 타석이었다. 같은 해 5월 김감독이 말렸으나 정상적인 걸음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의사의 권유대로 은퇴를 했다. [[한일은행]]에서 선수를 은퇴한 후 관행대로 은행에서 직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었으나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계산에 약해서 은행 일은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