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향가 (문단 편집) == 연구사 == 향가는 [[조선시대]]를 지나서 일제시대가 되도록 한국인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조선은 고려의 궁중음악인 [[고려가요]]는 이어받아 다듬고 정리해 오늘날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기록을 남겼지만 고려시대에 이미 맥이 끊어진지 오래라 해석부터 난해한 향가는 따로 정리하지 않았다. 향가를 처음으로 언어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일본인 학자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沢庄三郎, 1872-1967)였다. 일본인들이 향가에 처음 손댈 수 있었던 이유는, 향가의 표기 방법인 향찰이 일본의 [[만요가나]][* 고대시가를 모은 만요슈([[만엽집]])에 쓰인 가나로서, 현재 쓰이는 [[가나(문자)]]가 아니라 한자를 그대로 써서 일본음을 나타내었다.]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만요가나는 겉보기에는 일반 한문같지만 음으로 읽는 글자와 훈으로 읽는 글자가 섞여서 그 해석이 매우 까다로웠다. 만요가나는 [[에도 시대]] 학자들도 깊이 연구하였으므로, 일본인 학자들은 여기에 익숙했다. 따라서 이들은 향찰도 비슷한 방법론으로 접근하였다. 가나자와는 향가 중 <처용가>를 처음으로 해독하였고, 그 이후로도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64-1946) 등이 일부 향가들을 해독하였으며, 1924년에 일본의 조선어 연구자 [[오구라 신페이]]의 저서 《향가 및 이두에 대한 연구(郷歌及吏読の研究)》에서 최초로 향가 전체를 해독하였다. 한국인 학자 [[양주동]]은 여기에 자극받아 1944년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모든 향가에 대한 주해서인 《고가연구》를 발표했다. 이 책은 1964년에 내용 일부가 수정되어 《증정 고가연구》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수많은 한국학자들이 향가 해독을 시도하며 이전 설에 대해 수정을 가하였으나, 현재 교과서에 올라올 정도로 유명한 것은 양주동과 더불어 1980년에 [[김완진]]이 발표한 《향가해독법연구》 정도이다. 근래에는 한자음 연구자 유창균이 《향가비해》(1994)를 발표하였는데 제법 권위를 인정받는다. 이와 별도로 북한에서는 [[홍기문]][* [[홍명희|벽초 홍명희]]의 아들이다. 국사학계에서는 북한판 조선왕조실록인 '리조실록'번역팀의 총책임자로 유명하기도 하다.]이 《향가해석》(1956)이라는 책을 펴내어, 독자적인 향가 해독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