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핵무기 (문단 편집) == [[핵개발|핵무기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 ==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참여한 [[과학자]] 중에서도 이 폭탄의 말도 안 되는 파괴력에 인류의 멸망을 가늠해 보았으며, 핵무기를 떨어뜨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반핵-반전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팀장격이었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오펜하이머]] 박사가 가장 유명한 예. 하지만 파인만 본인이 쓴 다른 책에는 이 사람이 오펜하이머가 아니라 동료 물리학자 밥 윌슨으로 나온다. 그걸 보면 오펜하이머 홀로 고통스러워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후 파인만[* 히로시마에 떨어질 때는 냄비를 두들기며 위력을 계산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물론 소식을 들은 뒤 기분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긴다.]을 위시한 연구원들은 무엇을 하든 [[핵만능주의|"어차피 핵폭탄 1방이면 끝인데..."]]라는 단체 기력상실에 빠졌다. 과학자 중 케네스 베인브릿지는 아예 직접적으로 '이제 우리는 모두 '''[[개새끼]]'''가 되었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개새끼' 드립은 우회적 표현이 아니라 원문 그대로이다. (원문:"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결국 오펜하이머 박사는 정신줄을 놓아버린 다른 연구원들을 규합하지 못하고 혼자서 정부에 핵폭탄 쓰지 말자고 탄원하다가 공산당 관련으로 몰려 전후에도 과학계에서 제대로 활동을 못 했다. [[미국 대통령]]이 몇 번이나 바뀌고, 데탕트 분위기가 오고 나서야 복권. 핵무기는 훨씬 나중에 나올 수도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스파이 정보와, 이에 맞서 세계평화를 위해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는 성스러운 목적을 기저에 깔았다. 그러나 도중에 독일이 항복하고, [[우란프로옉트|독일의 핵무기 개발이 실은 거의 진행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핵개발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사보타주를 하여 핵개발을 막았다고 한다. 정말 사보타주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독일 연구자들이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 전혀 감을 못잡고 있었기에 하이젠베르크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하더라도 성공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잠시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참여 과학자들 중 상당수가 미국의 핵무기 독점 상황을 반대해서, 핵무기 개발 사실을 사회 각계각층에 알리고 계획의 중단을 호소하려 했다. 그것도 핵무기 개발 계획의 발안자였던 레오 실라르드가 그 선두에 있었고, 닐스 보어를 포함한 몇몇 과학자들은 무기의 독점을 막기 위해 다른 동맹국들, 궁극적으로는 적국에게도 핵무기 제작기술을 원론 수준만이라도 알려줘서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었는데 그중 큰 하나는 '예산을 이렇게나 쏟아부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다음 선거 때 정권유지가 어려워'란 이유였다는 얘기도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 자체가 비밀 프로젝트여서 돈이 나가는 것은 포착하는데 왜 나가는지는 극소수 인물만 알았다. 그만한 비밀 프로젝트가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면 그것 자체만으로 정권이 뒤집힐 수도 있었다. 당신 같으면 25조짜리 프로젝트가 아무 성과도 못 내고 끝냈다면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전쟁 중이었어도 25조가 애들 호주머니 돈도 아니고 충분히 정치적 폭탄일 수 있었다. 정작 [[독일]]보다는 [[일본]] 쪽이 핵무기 개발에 적극적이였다. [[니고연구]]은 우라늄 235을 추출하는 것이 목적이였고, 소량이지만, 리켄반응로에서 추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원석량이 부족해서 한국, 중국 등 점령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우라늄을 찾아다니는 한편 독일에 [[우라늄]] 원석을 요청했으나 1200파운드의 우라늄을 수송하던 독일의 [[잠수함]]이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항복해 실패했다. 또한 전쟁이 끝나기 직전, [[교토대학]] 연구팀[* 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가 여기 포함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이후 유카와는 반핵 및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에도 서명한다.]은 핵 원심분리기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미 [[함경남도]] 흥남시[*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가 이루어진 곳으로, 현재는 2005년에 함흥시로 통합되었다.]에 세운 [[암모니아]] 공장[* 정확히는 비료공장.]에서 [[중수]]를 생산할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다만, 교토대학 연구팀은 이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하지 못해서, 실제로 중요한 [[중성자]] 증배의 연구를 제대로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