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피선데이 (문단 편집) === 전성기 (2007년 8월 ~ 2011년) === 하이파이브와 불후의 명곡에 이은 나머지 한 코너를 채우기 위해서 [[강호동]]이라는 초특급 카드까지 데려온 '[[준비됐어요]]'까지 시원찮은 성적을 거두자 벼랑끝에 선 심정으로 만든 코너가 바로 후신인 '''[[1박 2일]]'''이다. 1박 2일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존재감]]이 커진 반면 하이파이브 자리에 들어온 두 코너가 연이어 망작이 되면서 ~~흑역사 [[강병규]]가 진행하던~~ 스쿨림픽을 끝으로 기존의 3코너 체제에서 꼬꼬관광 싱글싱글과 1박 2일의 2코너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하지만 [[불후의 명곡(해피선데이)|불후의 명곡]] 후속으로 준비한 꼬꼬관광 싱글싱글은 대차게 망했고 급하게 연말특집을 내걸며 부활한 불후의 명곡도 소재 고갈과 [[매너리즘]]으로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미 가수 섭외 난항과 소재 고갈로 어려움을 겪어 한 차례 종영된 프로를 다시 등판시켰으니 결과야 뭐..] 결국 2009년 봄, 불후의 명곡을 종영하고 MBC에서 이경규를 섭외해 [[남자의 자격]]을 새로 만들어서 해피선데이 자체의 위상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후 약 2년 간 거의 [[넘사벽]] 급으로 [[일요일]] 예능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광고 수입과 [[시청률]]을 위해 각 코너를 1, 2부로 분리 편성하는 동시간대 타사 프로그램들과 달리 아예 200분간 통째로 방송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원래 초기에는 40분정도 분량의 3코너 체제였는데 3코너 체제에서는 각 코너의 분량이 짧았기 때문에 시청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광고를 넣기가 쉽지 않았고 그 체제가 쭉 이어지면서 2코너 체제가 된 이후에도 중간에 광고를 삽입한다는 생각은 못 해본 모양이다.[* 그 시기에는 방송 3사 프로그램이 전부 관성적으로 두 코너를 이어서 한 프로그램으로 방영하던 시기였다.] 동시간대 타사 프로그램들이 해피선데이 시청률을 따라잡기 위해 일부러 분리하는 편법을 쓴 이후에도 광고 완판이고 시청률도 잘 나오기 때문에 분리할 필요성이 없어서 그대로 기존의 체제를 유지해왔다. [[일밤]] 코너 시절의 [[우리 결혼했어요]],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은 분리 꼼수가 통해서 방송 다음날 '일요 예능 1위' 언플이 가능했지만, 그나마 2010년 초반에는 해피선데이의 시청률을 따라잡기는커녕 시청률 20위권에 간신히 드는 수준이라 광고 수입을 위해 분리하는 것으로 봐야 될 것이다. 물론 2011년도 들어서는 예전처럼 압도적인 우위는 아니었지만, 그냥 하던 게 있으니 그대로 유지하는 분위기. 2008~2010년 KBS 연예대상에서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 을 3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2008년에는 해피선데이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1박 2일에게 주는 상이어야 했다는 1박팬들의 불만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이 편성된 2009년부터는 분명히 해피선데이 자체 수상이 맞다고 봐야 한다.] 2010년 3월 7일에는 '''통합 시청률 30%'''를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때 해피선데이 1부 코너(불후의 명곡과 남자의 자격)의 연출은 [[신원호(PD)|신원호]]가, [[1박 2일|2부 코너]]의 연출은 [[나영석]]이, 총괄은 이명한이 제각기 맡았다'''. 하지만 2011년이 되면서 신원호와 이명한이 [[tvN]]으로 이적했고, 곧이어 나영석도 이적하면서 메인 PD 세명이 한꺼번에 이탈했으니 어쩌면 쇠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반면 당시엔 수많은 케이블 중 하나에 불과했던 tvN은 이들의 영입으로 위상이 엄청나게 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