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적 (문단 편집) == [[현실은 시궁창]] == 창작물에서와는 달리 실제 해적들의 생활은 '''당연히''' 낭만적이지도 않고 해적들의 성격도 절대로 창작물에서 나오는 대로 멋지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다. 이는 [[느와르]]장르의 [[마피아]]나 범죄조직도 마찬가지. [[원양어업]] 등의 직종에 발을 담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당장 먼 바다에서 좁은 배를 타고 언제 육지를 밟을지 기약을 알 수 없는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고역이다. 게다가 [[무풍지대]]에 빠지기라도 하면 상선을 얼마나 많이 털어서 금은보화를 챙겼건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굶어죽기도 일쑤이고, [[사략선]]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나마 이 사략꾼들도 기본적으로 적국의 상선만을 나포하도록 허가받기에 '''자기네 정부'''한테서 처벌을 안 받는 것이며, 규정 범위 내에서 사략질하다가 적에게 붙잡힌다면 잠시 수감되다 포로교환으로 석방될 수는 있었어도 사략면장이 취소되거나 사략선으로서의 행위를 벗어나면 짤없이 해적으로 처벌받았다.] 각국 정부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해적을 소탕하려고 하기에 위험도도 높았다. 더군다나 해적이 된 이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잡히면 처형(서양권은 주로 [[교수형]]. 일명 '밧줄 춤'이라 불렀고, 동양 특히 동남아 해역의 중국 해적들은 흔히 엎드린 자세로 참수당했다.)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잡히지 않더라도 해적끼리의 싸움이나 침몰 같은 사고 등으로 죽는 경우가 많아 평균 수명은 30대를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은 극히 운 좋은 소수를 빼면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무역선의 화물, 심지어는 고기잡이 배를 털기까지 했었다. 심지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았는데 보물이 많을 줄 알고 털었던 배가 빈 껍데기뿐이 없어서 그 배를 털려고 사용한 화약값도 못 건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거기에다가 [[캡틴 키드]]의 경우는 사략 허가도 가지고 있었고, 살기 위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치 상황이 묘하게 꼬여서 후원자들한테 버려지고 결국 교수형당하기도 했다. [[현시창]]의 대표적인 예. 아무튼 그나마 풍요롭고 명예로운 삶을 살다 간 해적의 예는 [[헨리 모건]], [[프랜시스 드레이크]] 정도가 있고, 그나마 이 드레이크도 열병으로 5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게다가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잉글랜드 정부가 인정한 사략꾼이자 동시에 해군 장성이기도 했다. 그러니 인정을 받지못한 해적의 수명은 말할 필요가 없다. 깔끔하게 은퇴해서 죽은 유명한 해적의 예는 '존 보웬'이 유일하지만 이 사람도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바르바리 해적 중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해군 지휘관으로서 성공적으로 은퇴한 사례가 많지만, 가장 유명한 인물은 [[하이르 앗 딘]]이다. 오스만 제국의 해군 총사령관(데르야 베이) 겸 북아프리카 대총독 겸 로도스 총독 겸 에우보이아 총독 겸 키오스 총독 겸...... 등등 여러 관직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으며, 죽을 때는 문상객으로 집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터키 해군의 아버지' 로서 국가적인 추앙을 받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자기 자신은 천수를 누렸지만, 형과 동생들이 스페인이나 [[성 요한 기사단]] 등과 싸우다 전사하는 등의 아픔을 겪었으니 삶이 마냥 장밋빛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겠다. 그밖에도 동아시아에서 [[정일수]]가 깔끔하게 항복해서 오래오래 잘 살았다. 특히나 바다 한가운데서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땐 가죽제품을 삶아먹거나 하며 처절하게 보냈으며, 심할 경우엔 [[인육]]을 먹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해안을 떠돌며 금을 실은 상선을 약탈한 샬롯 드 베리의 경우, 먹을 게 떨어지자 우선 흑인 노예 둘을 선원들이 먹어버리고 그마저도 떨어지자 '''그녀의 남편까지 먹어치웠다고 한다.''' 다만 표류시 인육을 먹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건 국내 인터넷에 와전되어 알려진 사실인데, 또한 보름 이상 표류시 식인이 허용된다는 것은 출처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표류라는 것이 워낙 극한 상황이기에 정상참작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만.] 18~19세기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해양법이란 없었고, "Law of the Sea"는 뱃사람들간의 관습법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뱃사람들이 "우리끼리 일 처리할때는 이렇게 하자!"하는 규격화되지 않은 암묵적인 동의인 것이다. 또한 "인육을 먹어도 살인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사하거나 병사한, 즉 자연사한 시체의 인육을 먹어도 긴급피난상 살인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만약 같이 굶고 있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동료 여행자나 뱃사람을 살해하고 그 인육을 먹은 경우 여전히 살인죄로 기소가 되고 해당하는 벌을 받았으며, 해적들의 무법자적 성향을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들이 처벌받는 이유는 동료를 먹을 목적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장 해적들이 누군가가 아사하기를 기다리거나 자발적으로 날 먹으시오 하고 나서지는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다시 말하지만 식인 자체가 처벌대상인 것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