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서(명나라) (문단 편집) == 사후 == [[파일:해서 중국.jpg|width=700]] 고향 [[하이커우]]에 있는 그의 묘 이런 해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후대에 쓰여진 희곡이 바로 베이징 부시장 우한의 <해서파관>. 하지만 [[마오쩌둥]]이 베이징 시장 [[펑전]] 숙청을 위해 [[장칭]]과 [[야오원위안]]을 시켜서, 해서파관이 해서를 [[펑더화이]]에 비유하고 마오쩌둥을 [[가정제]]에 비유하여 [[대약진 운동]]을 비판한 것이라고 고발하게 하면서 [[해서파관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시작으로 [[문화대혁명]]이 시작된다. 그렇게 마오는 가정제를 초월하는 [[암군]]이 되는데 성공했다.[* 가정제는 악명을 남기는 것도 싫고 해서를 변호하는 신하들의 말을 들을 줄이라도 알았지 마오는 그런 것도 없었다.] 마오쩌둥 모욕에 연루된 해서도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나 억울한 꼴을 당했다. [[홍위병]]들이 몰려와 그의 무덤을 파괴했고 유골은 유실되었다. 1966년의 무덤 뽀개기 광풍으로 외국인 묘 2만 5천 기 이상, 산동성 곡부의 공자와 그 후손들이 묻힌 공림 등이 숱하게 파괴되었는데 해서 역시 희생양이 된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