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항우/생애 (문단 편집) ==== 몰락의 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94px-H%C3%A1n_X%C3%ACn.jpg|width=100%]]|| || '''[[한신]]''' || 바로 '''[[한신]]의 북벌이 거의 완수 직전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유방이 항우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사이 한신은 위, 대, 조, 연나라를 모두 평정하고 이제 제나라마저 평정 직전에 있었다. 그나마 항우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오긴 했다. 그건 바로 [[역이기]]가 제나라를 언변으로 복속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한신이 [[괴철]]의 꼬드김에 넘어가 동맹 성사 직전 제나라를 공격 한 덕에, 뒤통수를 맞은 제나라 잔존 세력이 크게 분노하여 [[역이기]]를 죽이고 원수 항우와 손을 잡는 강수를 택한 것. 이에 응한 항우는 [[용저|용저(龍且)]]에게 20만이라는 대군을 주어 제, 초 연합군을 결성해 대항하게 하였다. 항우가 직접 가면 좋았겠지만, 결국 직접 가지는 못 했다. 다만 고작 보름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유방에게 조구가 패배해 모든 게 틀어졌으니 같은 행동을 하기가 불안했을 수도 있다. 소설 같은 매체의 영향으로 유방의 군사적 능력이 폄하되는 편이지만, 유방은 결코 군사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항우와의 싸움을 제하면 유방은 자신이 나선 거의 대부분의 싸움에서 승리했던 지휘관이다. 한신이 북벌할 동안 직접 항우를 상대로 계속 판을 이끌어나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 항우도 직접 가지만 않았을 뿐이지 20만이라는 대군을 보낸 데다가 자신이 신임하는 용저를 보냈고 그와 더불어 부관으로 주란이 함께 있었고 제왕 전광과 더불어서 전광이 모아온 제나라의 남은 병력까지 합해져 있었던 만큼 한군에 비해 결코 불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신은 오히려 [[유수 전투]]에서 [[용저]]가 이끄는 제, 초 연합군을 격파하고 용저를 참살하였다. 이로써 화북의 대부분이 한신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한신]]은 사실상 항우, 유방과 맞먹는 거대한 세력권을 가지게 되었다. [[용저]]의 대패로 인해 항우는 결과적으로 [[초한전쟁]]의 패배자가 된다. [[유수 전투]]를 단지 [[한신]]과 [[용저]]만의 전쟁이라기에는 병력 규모도, 양쪽이 얻은 이득도 피해도 어마어마한 셈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유수 전투]]에서 승리하고, [[한신]]을 막았더라면 유방의 통일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중요한 전투였지만, [[용저]]가 대패를 당했기 때문에 대세는 이미 유방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항우는 이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수하의 [[무섭]](武涉)을 보내 한신을 설득하게 했지만, 한신은 "항우 그 자가 날 어떻게 대접했나? 유방은 밥 주고 옷 주고 장군 시켜주고 다 해줬는데 이제 와서 날 찬밥 취급한 항우의 편을 하라?"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며 거절해 버렸다. 한편 팽월은 이 와중에 또 튀어나와 양나라 쪽을 공격해 항우의 보급로를 끊어 놓았다. 이후 반년 정도 대치를 지속했지만 항우에겐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여력이 없었다. 한동안 가왕 신청 등으로 늑장을 부리던 한신도 202년 8월 즈음에는 초 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