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문화) (문단 편집) == 쇠락 ==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2000년대에도 드물게나마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거의 완전히 사장되었다. 21세기에 이웃끼리 싸움나는 원인으로 [[층간소음]]이 있다면, 20세기에는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닐지언정 이웃간의 다툼이 벌어지는 원인 중 하나로 함진아비가 꼽혔다. 서울이나 수도권, 일자리가 많은 도심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함팔이가 어려워졌다. 대개 해가 지고 어두컴컴할 때에 가는데 그 시간에는 잠자리에 누운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함 사라고 소리를 질러대면 이웃이라도 생면부지인 사람이 결혼한다고 시끄럽게 굴면 좋을 리가 없었다. 과거 이웃끼리 다 알던 작은 농촌 공동체에서는 누구네 집 딸이 시집가나 보다 하고 넘어가거나 아예 그 집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하던 것이 이제는 다 모르는 사람이 되면서 함 팔이가 [[소음공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아파트에서 함 사세요 몇번 외치다가 옆집 사람이 시끄럽다며 뛰쳐나오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소음문제는 애교에 불과하고, 함진아비 역할을 맡은 사람이 적당히 선을 알면 좋은데 끝간데 없이 까불고 대접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신부 측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파혼|아예 혼사 자체를 파토내버리고 마는]] 사건 때문에 안 좋은 인식이 퍼졌다.[* 함진아비 한 명이라면 몰라도 친구 여럿이 가는 것이다보니, 그 중 함진아비 본인도 아닌 주제에 눈치없이 행패를 부리는 찌질한 못난이가 한 명 끼어 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함진아비 혼자가기 운동, 혹은 동네 어르신들이 대신 가주기 운동 등이 함진아비 문화의 개선책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즉, 어느 순간부터 이게 신부측으로부터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이상한 갈취 문화로 변질되는 바람에 돈독이 오른 신랑측 친구인 함진아비들이 한 걸음 나갈 때마다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 부리다가 신부측 친구들이나 신부 가족과 시비가 붙어 싸우거나[* 보통 함진아비 및 그 일행 역할은 신랑친구들이 맡고, 신부친구들은 신랑친구들을 맞아 요란하게 환영하며 신부네 집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신부친구들이 장기자랑으로 노래도 한 곡 뽑고 아양도 떨면 신랑친구들이 몇 번 튕기다가 못이기는 척하고 집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이 단락에 적혀 있듯이 막무가내로 버티면서 거액을 요구하고 행패를 부리면 그때부터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급기야 함진아비 핑계로 나타나서 [[도둑질]]까지 하는 만행이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1976년]] 11월 15일자 [[경향신문]]에서는 함진아비가 자기가 가는 길에 돈을 깔라고 막무가내로 나와서 돈을 깔아줬더니 돈을 발로 짓이겨서 찢은 후에 더 깔라고 요구해서 싸움이 벌어진 사례를 소개했고, [[1999년]] 10월 16일자 [[조선일보]]는 함진아비 풍습이 이미 전통을 벗어난 행패에 불과하다고 깔 정도였다. [[1994년]]에는 함진아비가 함값으로 무려 200만원을 갈취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해서[* 사립 대학교 문과 계열의 한 학기 [[등록금]]이 200만원을 넘게 된 게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즉, 함값으로 등록금보다 더 큰 액수를 갈취한 것이다.] 함진아비가 [[혼수]]급의 부담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1996년]] 3월 4일에는 결혼한 새신랑이 함값 50만원을 요구했는데 장모가 10만원 밖에 주지 않았다고 [[시집살이|새색시를 구박]]하는 바람에 신부가 호텔 7층에서 뛰어내려서''' [[투신자살]]'''하는 실로 기가 막히는 사건도 벌어졌다. 불과 6개월 후인 1996년 9월에는 150만원의 함값을 뜯어내고도 함값이 적어서 망신당했다고 신부를 구타해서 파혼당하고 64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걸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규태]]도 칼럼으로 정작 예전엔 없던 정체불명의 풍습이라고 비난했고, [[결혼정보회사]]에서 10~30만원 이상은 주지 말라고 조언하는 등 지금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곤 했다. 이후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보편화된 21세기에는 이런 시끄러운 풍습이 민폐라는 인식이 퍼져 멸종에 이른다. 한때 이게 익숙했던 기성세대들도 '추억으로 기억하긴 해도 그립진 않다, 없어질 만했다'는 반응을 많이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