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통 (문단 편집) == 생애 == 한통은 병주(并州) 태원현(太原縣)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군에 들어가 뛰어난 용력으로 기병대의 대장을 맡았다. 947년 [[후진]]이 멸망하고, [[유지원]]이 거병하자, 한통은 유지원의 막하로 들어갔다. 한통은 유지원 휘하에서 검교국자좨주를 지냈고, [[후한(오대십국시대)|후한]]이 건국된 뒤에는 검교좌복야, 봉국군 지휘사를 역임하였다. 950년 후한이 멸망하고 곽위가 후주를 건국하였는데, 한통은 이 과정에서 군권을 책임진 인물로 활약했다. 이후 곽위가 연주를 친정할 때, 한통은 개봉에 남아 우상도순검(右廂都巡檢)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황하가 범람하자, 한통은 황하의 제방을 축조하여 범람을 막았고 그 공적으로 보의군 절도관찰 유후로 임명되었다가, 정식으로 절도사에 제수되었다. 이후 953년 곽위 사후 시영이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은 [[북한(오대십국시대)|북한]]의 유숭이 후주를 침입하자, 한통은 북한의 군대를 공격하여 물리쳤다. 곽위가 죽고 시영이 즉위한 이후에도 한통은 시영 휘하에서 여러 공적을 세웠다. 960년, 조광윤에 의한 [[진교의 변]]이 일어나자, 한통은 진교의 변 소식을 듣고 서둘러 개봉으로 향하려다가 중도에 [[왕언승]](王彦昇)과 마주쳤다. 한통은 왕언승에게 쫓겼고 결국 이때 처자와 함께 그에게 살해당했다. 조광윤은 왕언승이 한통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에게 중서령을 추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