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중러관계 (문단 편집) === 해방 이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중소결렬)] 2차대전 말 한반도에 주둔한 일본제국군을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에서 한반도 북부에는 [[만주 전략 공세 작전|소련군이 진주]]하였고, 한반도 남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1949년 중국에서 중화민국이 대만 섬으로 쫓겨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됨으로서 공산국가가 되었다. 한국은 제1세계 진영 소속 국가로 냉전 시대 제2세계 국가인 중국, 소련과는 갈등이 존재했다. 다만 한국에서 국민들에게 공산권 국가들을 막연히 다 같은 편으로 생각하도록 교육했던 것과 별개로 중국과 소련은 1960년대부터 심각한 정치적인 갈등을 빚고,([[중소국경분쟁]] 참조)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 외교를 벌이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중소결렬]]의 직접적인 계기 중 하나가 한국전쟁 관련한 소련과 중국의 입장 차이였다.''' 중국이 소련에 실망하게 된 첫번째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스탈린은 원래부터 북한의 남침을 지원하는 것에 소극적이었으며,[*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무력을 통한 한반도 [[적화통일]] 옹고집에 [[소련]]이 간신히, 그것도 반신반의하며 겨우겨우 승인받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거기다 중국의 경우 자국 코 앞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북한이 끝까지 몰아붙이나 싶었더니 곧 전황이 뒤집혀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이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엔군사령부|UN군]]이 [[압록강]]까지 [[광속]]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충격과 공포]]를 얻어먹은 반면, [[소련]]은 머나먼 극동의 변경 끝자락에 붙어 있는 [[한반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북한군이 유엔군의 반격으로 패망 직전에 이르자 중국측에 참전을 종용하면서도 자신들은 끝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소련의 지원은 겨우 [[공군]]뿐, 그것도 [[평양]] 이북의 한반도 북부지역에만 공습하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한정적으로 출격했으며, 그 이남에서 제공권 없이 싸우는 중국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한반도에 신경쓰느라 양안통일이 물건너 간 것은 덤이다. 이 때문에 중국 지도부는 한국전쟁 지원에 소극적인 소련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고 중국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소련,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뤄지기도 했다. 소련은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려 할때마다 반대하던 입장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정책]]의 결과 90년에 한소수교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1991년]] 9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이 이루어질 후 있었다. 1992년에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졌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중소결렬, version=17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