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자동맹 (문단 편집) == 역사 == 최초의 "Hanse"는 [[신성 로마 제국]]의 [[대공위시대]]가 계속되는 와중인 1267년에 등장했으나, 14세기 초 [[플랑드르]][* 플랑드르 백작령, 지금의 [[벨기에]]의 [[네덜란드어]]권 플란데런과는 영역의 차이가 있다.]가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라인강]]과 [[발트해]][* 후엔 [[북해]]와 [[엘베강]]까지]의 상업도시들이 상권 확보 및 집단 안보를 위해 [[길드]]와 한자를 설치한 것을 시초로 한다. 무력을 동반한 무역봉쇄를 시도한 것. [[뤼베크]]를 맹주로 해 [[쾰른]], [[브레멘]], [[베를린]]이 뭉쳤고, [[함부르크]]와 [[뮌스터]], [[로스토크]], [[마그데부르크]], 멀리 [[단치히]](현 폴란드 그단스크), [[리가]]까지 최대 90여 개 도시가 참여했다. 그리고 이들은 영국,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플랑드르 일대에 콘토르(kontor)라 불렀던 동맹의 자체적인 대변인과 정주 상인 집단을 보내고 장사하던, 한자 동맹의 정규 교역 대상인 항구 도시들과 특혜 관계를 맺었는데, 이 중에서 대표적인 도시는 [[잉글랜드]] [[런던]]. 런던에 살던 뤼베크 출신을 중심으로 한 한자동맹 상인들은 특권 가지고 중세, 근세 초 영국의 대북유럽 교역에 막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상인집단을 [[스틸야드]](Steelyard)라고 부른다.[* 중세 저지대 독일어로 안마당을 의미하는 단어 stâlgard(스톨가르드)가 변형된 단어로 추정된다. 런던이 한자동맹에게는 말 그대로 안마당 멀티였던 셈이다.]. 런던 말고 다른 대표적인 한자 동맹 특혜도시, 즉 콘토르들은 현대 [[벨기에]] 저지대의 [[안트베르펜]], [[브뤼헤]], 현대에는 [[스웨덴]] 땅이지만 당시에는 [[덴마크]]령이었던 [[스코네]](Skåne)의 [[말뫼]],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의 [[항구 도시]]였던 [[리스#s-6]], 중세 러시아의 대표 도시였던 [[노브고로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주요 도시였던 [[카우나스]]와 리투아니아가 성장 과정에 흡수했던 옛 [[키예프 루스]]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던 [[폴라츠크]] 등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미치는 곳을 따지면 오늘날의 영국, [[네덜란드]]에서 러시아까지 광범한 북유럽 무역 네트워크 전역을 지배하던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70년에 전성기를 맞았고, 최대 판도는 리가만에서부터 [[노르웨이]]의 [[베르겐]], 플랑드르, 런던까지 말 그대로 [[북해]]를 안마당처럼 누볐으며, 강을 타고 올라가 독일 내륙의 중계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 시기에는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1402년에 발트해의 해적 클라우스 스퇴르테베커와 고디어 미헬스를 소탕, 1426년 [[칼마르 연합]]의 왕 [[에리크 7세|포메른의 에리크]]가 무역선들로 하여금 자신의 영토인 준트를 지나갈때 통행세를 요구하자 선전포고를 날리는 등의 움직임이 이 때문에 가능했던 것. 그러나 무역의 중심이 바뀌면서 점차 쇠퇴하다가 [[17세기]]에 쇠락했다. 단적인 예가 16세기 말 [[엘리자베스 1세]] 시기에 잉글랜드 내 교역의 중심이 잉글랜드 상인들에게 넘어오면서 스틸야드의 특권이 회수되면서 무너진 것이고, 결정적 계기는 [[30년 전쟁]]이었다. [[베스트팔렌 조약]] 영향으로 국민 국가 개념이 자리잡으면서, 더 이상 도시 연합체가 지정학적인 권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1669년 9명의 대표단이 뤼베크에서 한자의 날을 맞이하여 만났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그 후 한자 동맹 규합 세력이 사실상 사라지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