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일전 (문단 편집) === 축구 === 일반적으로 '한일전'이라고 하면 양국간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쉽게 떠올린다. 역대 전적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는 편이다. 특히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은 한국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한국축구의 레전드이자 슈퍼스타 [[차범근]]이 활약하던 시기였던 1970~80년대에는 일본의 눈 앞에서 한국이 언제나 아시아권의 최종보스로 군림했던 시대라 항상 쪽도 못 쓰고 깨지면서 상대도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은 언제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한국]]의 [[일본 1군|밥이었고]], [[승점자판기]]였다.[* 이 시절의 일본이 어느 정도였냐면, 1981년까지 그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래도 1980년대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2000년대 이후로는 중일전 무패를 기록하고 있지만 과거에 다수 패배한 기록 때문에 상대전적은 17:15로 근소 우위이다.] 물론, 더 윗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정민(축구)|최정민]]이나 [[이회택]]처럼 기라성같은 대형 공격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한국을 1:0으로 승리했지만, 이라크에 경기 종료 30초 전에 통한의 동점골을 먹히면서 월드컵 본선진출권을 한국에 넘겨 준 [[도하의 기적]] 당시엔 뒷목잡고 쓰러진 일본인들도 있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하면서 [[AFC 아시안컵]] 우승 횟수에서도 한국을 앞서게 되었으며[* J리그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는 한국 축구선수들도 과거부터 많았다.], 한국 역시 [[히딩크호]]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를 거듭하며 두 나라의 축구 전력은 비등비등할 정도로 치열하다. 한국 역시 축구에 대한 금전적인 투자가 활발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축구]]와 관련된 예산을 2, 3배 정도는 더 많이 사용한다.[* 물론,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고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준 종목은 그동안 야구가 압도적이었던 터라 축구는 만년 2인자 신세였다. 한국 내에선 그 어떤 스포츠도 감히 비교할수 없는 인기를 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달리 일본은 국대 축구조차 야구를 누르지 못할 정도로 야구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일본의 경우는 특히 1990년대 들어서 버블경제 붕괴의 여파로, 국가 경제력이 많이 후퇴하던 상황인지라 스포츠에 그리 많은 돈을 쓸 여력이 안되기도 했었지만 2010년대 이후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일본이 한국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근소하게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절대로 한국의 축구 실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한일전 축구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은 선수들 개개인의 피지컬에선 열세지만 스피드 위주의 섬세한 [[티키타카|패스축구]]에 유리하고, 한국은 우세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허슬 플레이와 롱볼 축구에 발달되었다. --다윗과 골리앗-- 사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피지컬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평균 이상은 된다. 또한, 한국 국대의 평균 신장도 180cm 중반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경쟁국들과 비교해도 상위권에 속했다.[* 평균 신장 순위가 월드컵 본선 참가 32개국 중 5위였다.] 물론 축구는 피지컬로만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전술 스타일이 이른바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는 [[아리고 사키|압박축구]]와 [[뻥축구]]인데, 일본만 만났다 하면 원래 적당히 견제하던게 무슨 [[싸움닭]] 마냥 미친듯이 달려드니 한결같이 잘 통해서 계속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이 패배하는 경기에서도 저 킥 앤 러시나 롱볼패스 때문에 일본이 위기를 맞이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결국, 피지컬이 약해서 헤더로 공중전을 잘 따낼 선수들이 없다는 것과 수비수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그나마 공중볼을 잘 막아줬던 선수는 일본의 레전드 야마구치 모토히로, [[엔도 야스히토]] 정도였다. 요즘에는 월드컵 최종예선과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 지겹도록 마주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과의 악연이 깊어지고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일전이 계속 무산된 덕분에 예전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피터지게 치고 받던 1990년대에 비해서 약간 좋아졌을 뿐이다. 여전히 한일전에서 패배하는 쪽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분노가 치솟고 기분까지 허탈해진다. 2010년대에는 대리 한일전이 이루어졌는데, 태국의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일본인 니시노 아키라가 맡았고, 베트남은 한국인 박항서가 맡은 데다가, 이 국가들 또한 한일처럼 양국이 상당히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동남아, 국제 축구 대회에서 이들이 맞붙게 되면 예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우연히도 베트남과 태국은 각각 한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도가 높다.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 초반은 국내파로만 출전하여 친선전에 가까운 동아시안컵이나 연령별 대표팀 외에는 만난 적은 없다. 두 팀 모두 상위 시드를 배정받아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다른 조에 배치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 때 결과들이 전부 한국이 일본한테 3:0으로 패배하여 워낙 안 좋다. 그리고 A급 대표팀 경기는 양측 모두가 패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서로가 꺼린다고 한다. 차라리 중동이나 동남아의 소국에게 어이없게 패배해서 욕먹는게 낫다고 느낄 정도로 한일전에서의 패배는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지옥을 맛보도록 해준다. 그리고 과거보다 유럽, 남미의 강팀들과의 A매치 협상도 쉬워진 터라 굳이 양측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한일전을 성사시킬 필요도 없긴 하다. 서로 부담되는 문제 때문에 우선 서로 친선경기를 가급적 잡으려 하지 않고, 만약 잡혀도 1군을 총동원한 총력전을 하려 하지 않으며, 동아시안컵은 기본적으로 양팀 다 [[축구 해외파 선수들|유럽파]]가 나오지 않으니, A대표들의 경기라고 해도 진정한 한일전 승부라고 할만한 경기가 10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다. 양팀이 마지막으로 1군 대결을 제대로 했다 볼 수 있는건 2022년 기준 10년이 넘은 [[삿포로 참사]]([[2011년]] 8월, [[조광래호]] 시절)이고 이것도 친선경기라고 제외하면 2011년 1월의 [[2011년 AFC 아시안컵/4강&결승|아시안컵 4강전]](이 역시 조광래호 시절)이 마지막이다. 그 이외는 전부 유럽파가 없는 [[동아시안컵]]이거나 1군이 빠진 친선경기라 한일전이라는 이름값에 맞지 않는 승부들만 오랜기간 이어져오고 있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나 [[아시안컵]] 정도는 되어야 양팀 모두 정식 [[A매치]] 데이에 1군을 동원한 진검승부를 하게 될텐데, 공교롭게도 월드컵 예선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B조|1998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 이후 같은 조에 편성된 적이 없고, 아시안컵에서는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2011년 대회]]의 [[2011년 AFC 아시안컵/4강&결승|4강전]]을 마지막으로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기준으로 한일 양국 선수들간의 개인적 친분이 꽤 있는 편이다. 현재는 한일 선수들 모두 유럽 리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서 그곳에서 친구처럼 지내는 선수들이 많아졌고 일본 선수가 한국 선수를, 반대로 한국 선수가 일본 선수를 본받고 싶다는 인터뷰 사례도 늘어났다. 다른 종목에 비해서 한일축구 선수들끼리의 감정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2021년 11월 기준으로 현재 한국과 일본의 초신성이자 유망주로 손꼽히는 [[이강인]]과 [[쿠보 다케후사]]는 [[라리가]]에서 서로 같은 팀인 [[RCD 마요르카]]에서 2021-22 시즌 한 시즌을 함께 보낸 영향으로 사이도 좋은 편이다. 실제로, 한국 뿐 아니라 일본도 꾸준한 투자로 21세기 들어 실력이 급속도로 상승하자, 한국 또한 경쟁 의식 때문인지 함께 실력면에서 좋아진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제 경기에서도 괜찮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예전만 해도 둘다 유럽진출을 많이 하지 못한 반면, 21세기 들어서는 한국 뿐 아니라 모두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우승팀에서 활약하기도 했는데, 일본은 양질의 해외파를 보유하고 있고,[* 4대리그 주전들로 가득 차있고, 이걸 바탕으로 [[2022년 월드컵]]에서는 최악의 죽음의 조를 1위로 통과하는 저력을 보였다.] 한국은 아시아인 최초로 [[손흥민|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배출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국민감정이 좋아지기도 했고, 아시아 최고의 라이벌로 성장하며 서로의 발전을 위한 경쟁의 필요성과 강한 자극을 주는 존재로 변했다. 당연히 일본에서도 한일전을 굉장히 의식하고 있고, 일본 감독을 맡은 [[알베르토 자케로니]]도 그 중요성을 알고 있다. 심지어 일본의 위키백과에서는 [[J리그]] 창설 이후의 실적을 따로 집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