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용운 (문단 편집) == 생애 == 1879년 8월 29일, 충청도 결성현 현내면 박철리(현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박철마을)에서 부농인 아버지 한응준(韓應俊)과 어머니 [[방(성씨)|창성 방씨]](昌成 方氏)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고 18세 때인 1896년(또는 1897년) 고향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수년간 [[불교]] 서적을 읽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출가]]의 원인 역시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고향 홍성에서도 [[동학농민운동]]과 [[의병]]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의 부친 한응준은 일찍이 충훈부(忠勳府)[* 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관서. 지금의 [[국가보훈처]]에 해당한다.]의 종5품 도사(都事)를 지내다가 1894년([[고종(대한제국)|고종]] 31) 12월 5일 호연초토사(湖沿招討使) 이승우(李勝宇)의 참모관(參謀官)에 제수되어 동학농민운동 진압에 참여하게 되었으며[[https://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31_12A_05A_00050|#]], 도중 전사하였다. 이로 보아 [[역사]]적 격변기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영제(永濟) 스님에 의하여 수계(受戒)를 하니 득도 때의 계명(戒名)은 봉완(奉玩)으로 이때 출가하여 얻은 [[법명]]이 바로 용운(龍雲)이다.[* 그러니까 '용운 스님'인 것이다. 일부 소개글에는 법명을 보통 이름(속세 시절 이름)으로 표기하는 오류가 존재한다. 한용운이라는 [[이름]]이 알려져 있다보니 이걸 [[본명]]으로 오해해 생긴 오류로 보인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 학교로 운영 중이던 우당 [[이회영]] 등의 [[신흥무관학교]]를 방문, 격려하였다. 뒤이어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해 불교 [[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12년 양산 통도사에서 팔만대장경을 열람하고 1914년[[부산광역시|부산]] [[범어사]]에서《불교대전(佛敎大典)》을 간행하고 [[대승불교]]의 반야 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다. 이후 [[오세암]]으로 들어가 [[화두]]를 참구하며 수행에 정진했다. 그렇게 수행하던 중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 > 男兒到處是故鄕 > 幾人長在客愁中 > 一聲喝破三千界 > 雪裡桃花片片飛 > > 남아란 어디메나 고향인 것을 > 나그네 수심에 잠긴 이 그 몇이더냐 > 한 마디 큰소리 질러서 삼천 대천 세계 깨뜨리니 > 눈 속에 복사꽃 조각조각 날리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선언하고 자진 [[체포]]되었다. 3년을 복역한 뒤 출소해 [[민족]] 의식 계몽에 대한 준비를 한 후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 [[문학]]에 앞장서고 불교계 항일 단체 '만당'에 당수로 추대되는 등 각종 민족 운동 및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어려운 불교를 대중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팔만대장경]]의 핵심 부분만 뽑아내어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유심>이라는 불교 [[잡지]]를 발간하여 글로써 민족 의식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1944년, [[광복]]을 불과 1년 남기고 향년 65세에 [[뇌졸중]]으로 [[입적]]했다. 숨진 뒤에도 [[체온]]이 내려가지 않고 혈색도 양호했기에 사람들은 한용운이 다시 눈을 뜨지 않을까 기다렸다가 사흘이 지나자 화장했다고 하며 화장한 후 [[망우역사문화공원|망우리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훈장|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