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왕용 (문단 편집) === 히말라야 14좌 등정 === 1994년 [[초오유]] 등정을 시작으로 하여 2003년 [[브로드피크]]까지 히말라야 8,000m 거봉 14좌를 완등한 인물이다. 그는 1995년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박영석 대장의 부탁으로 정상 직하에서 뒤처진 다른 팀 대원을 무려 5시간 15분을 기다려 만난 뒤 기진맥진한 그를 부축해 하산하는 초인적인 휴머니즘을 발휘한 일이 있다. [[http://weekly.donga.com/3/all/11/76336/1|기사1]],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220&contentsParamInfo=isList%3Dtrue%26navCategoryId%3D59115&cid=59115&categoryId=59115|기사2]] 또한 1996년 여름 [[톈산 산맥]] [[포베다 산]]에서도 타 원정대의 대원을 살려내고, 1997년 [[가셔브룸]] 1봉에서는 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구출해 베이스캠프로 데리고 내려오기도 하는 등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2년 [[K2(산)|K2]]를 등정하고 하산한 후, 쇠망치로 뒷통수를 한대 맞는 듯한 충격을 받은 후 결국 혈전으로 막혀 있었던 뇌혈관 확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220&cid=59115&categoryId=59115|관련 글]] [[박영석]]과 [[엄홍길]]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성공했던 2001년 당시 그는 8개의 봉우리를 등정한 상태였다. 1등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받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산을 오르려는 그에게 '바보 아니냐'며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도전을 계속했고, 마침내 2003년 [[브로드피크]]를 마무리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다. 최후의 목표 달성 직전 [[크레바스]]에 발이 빠져 생명이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389917|기사]],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220&contentsParamInfo=isList%3Dtrue%26navCategoryId%3D59115&cid=59115&categoryId=59115|네이버캐스트]] || [[2014년]] KBFD뉴스에서 진행한 인터뷰 || || [youtube(nHpsYCFWOC0)]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