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영관계 (문단 편집) == 역사 ==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나라 중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영국과 '''직접적인 갈등이 없었던 정말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옆나라 중국과 일본만 보더라도, [[청나라]]는 [[아편전쟁|말이 필요없고,]] 비슷한 시기 [[일본]]도 [[나가사키]]의 페튼호 사건이 있었다. 게다가 2차 대전때는 아예 [[귀축영미|적성국]]으로서 [[태평양 전쟁]]때 갈등을 빚었다.] 문자 그대로 전세계의 모든 나라를 들쑤시고 다닌 [[대영제국]]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한국은 지리적, 국제정세적 요인으로 인해 영국과의 마찰을 기가 막히게 피해온 매우 희귀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가장 큰 동맹국가이자 혈맹인 미국마저도 18~19세기 서구열강 제국주의 시절 [[신미양요]]나 전통적인 친일 성향에 의한 [[가쓰라-태프트 밀약]], 20세기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시절과 더불어 미묘한 마찰이나 불편한 이슈들은 끊임없이 있었는데, 영국의 경우는 한국의 근세 태동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찰이라고 할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 [[영일동맹]]의 체결로 일본의 조선 합병을 묵인하기는 했지만 이를 갈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영국과 관련된 일로는 '''[[거문도 점령 사건]]''' 정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조선보다는 조선에 대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행위였기에 애매한 감이 있다. 거기에, 거문도에 상륙한 영국군은 거문도 주민들과 매우 우호적으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당한 대가를 주고 주민들을 용역으로 고용하거나, 거주지 제공에 대한 보답으로 주민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으레 폭력이 뒤따르기 마련인 강제 점령에서마저도 마찰이나 갈등이라고 볼 만한 사건은 전혀 없었다.[* 당시 [[영국 해군]]의 군기가 꽉 잡혀있었고 지휘관과 병사들이 비교적 유화적인 편이어서 도민들이 조선 조정의 관리들보다 [[영국군]]을 더 좋아했다는 야사까지 있을 정도다.] 비록 영국이 조선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과거부터 한국과 마찰이 없었던 것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긴 하지만, 좌우지간 현 시점에서 보아도 역사적•외교적•정치적으로 양국 사이에 마찰 혹은 갈등이 생긴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족으로, 한국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비단 영국 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도 소규모 이상의 마찰이 없었기에,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서 구미 국가들은 식민지배자, 제국주의자, 전쟁 교전국의 포지션인데 비해, 한국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구미 제국주의 열강들의 군대가 한국을 지키기 위해 파병되고 희생됨으로써 오히려 '''해방자, 은인'''의 이미지로 시작하게 되었다. 즉,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 악명을 떨친 북미유럽은 지리적 특성상 엮일 일이 없던 현대 한국에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매우 좋은 편인데, 특히 소규모의 마찰조차 없었던 영국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편이다.[* 심지어 독일(정확히는 서독으로부터 이어지는) 마저도 한국에서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다. 물론 통일 이슈에 관한 여론 적용도 있고, 한국은 나치와 연관이 거의 없고 서독이 냉전 당시 한국에 원조 및 도움을 준 영향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