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서 (문단 편집) == 상세 == [include(틀:한서)] 서사적인 면모가 강한 사기에 비해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는데 중점을 둬서 겹치는 부분인 고제기(사기의 고조 본기)를 비교해봐도 연도와 달을 명확히 표기하고 사건의 선후순서를 잘 정리하였다. 때문에 한서의 고제기는 초한시대를 살피는 데 가장 기본적인 토대로 삼기에 유용하다. 한서는 사실 사기의 성과를 토대로 하여 성립하였다. 예를 들어 한서는 사기에 없었던 혜제기(惠帝記)를 추가하고 당시 사회의 중요한 제도와 법령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사기의 위장군 표기 열전에서 장건의 사적을 추출해 내어 독립된 전으로 구성하였다.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 [[조조(전한)|조착]](晁錯)의 언병사소(言兵事疏) 같은 중요한 상주문을 포함시켰다. 이런 비교적 완전한 조서(詔書)나 주의(奏議)의 인용은 사기와 비교되는 한서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고는 지(志)와 표(表)의 찬술 중에 그의 굉박한 학식을 드러냈는데 한서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진한시대의 관제에 대한 서술로 비록 세세하게 하나 하나의 설명이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요점을 파악하게 핵심을 잘 서술했다고 평가 받는다. 이외에도 형법지(刑法志), 지리지(地理志), 오행지(五行志), 예문지(藝文志), 식화지(食貨志)는 당시의 제도와 지리의 연혁, 기상현상, 생물 등을 알아보고자 할 때 굉장히 중요한 참고자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사기의 서술 범위인 한 무제 이후의 사실 역시 반표(班彪)의 사기후전(史記後傳) 외에 유향(劉向), 유흠(劉歆), 양웅(揚雄), 풍상(馮商) 등의 저술을 참고로 삼았다. 특히 한서는 비교적 객관적인 서술을 하여 왕망전(王莽傳)의 경우 서한 시대와 이어진 신 왕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동관한기나 후한서 같은 책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유수를 미화하고 왕망을 폄훼하는 듯한 서술이 있는데 한서의 경우 최대한 객관적인 측면으로 사실에 접근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한서가 이런 방식으로 서술된 것은 응당 그 저자인 반고가 중국 전통적인 유학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당시 중국 봉건사회의 예교(禮敎)사상 때문에 한 무제 시대의 사마천만큼 대담하게 역사가의 직필정신을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역사가로서의 자각심은 있었던 지라 서한시대의 다양한 부패한 정황을 그대로 서술하지는 못하고 또 덮어버리지도 못하는 심리적인 모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를 비판할 때에 자기의 말을 그대로 싣는 것이 아닌 사마천이 기존에 썼던 사기를 인용하되 일부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사회의 심리적 구속과 역사가로서의 사명감에 균형을 유지했던 것이다. 열전의 제목을 정할 때 각 인물의 존칭이나 관직명을 쓴 사기와는 달리 각 인물의 본명을 명시하여 사기에 비해 누구의 열전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쉽게 편성했고 이후의 정사들도 모두 이 체계를 따랐다. 열전의 순서를 창업자와 경쟁한 군웅들의 일대기를 먼저 넣고 그 다음에 개국공신의 일대기를 넣는 식으로 정사의 열전 순서를 체계화했다. 표(表) 마지막 부분에 고금인표(古今人表)가 있는데, 이는 오제시기부터 반고 생전까지 살았던 인물들의 공과 덕을 평가하여 9등급(上上 - 上中 - 上下 - 中上 - 中中 - 中下 - 下上 - 下中 - 下下)으로 나누어 배열한 것이다. 이 중 최고 등급인 상상(혹은 성인聖人)에는 삼황오제 등 14인이 실려 있고 상하(혹은 지인智人)에는 [[창힐]], [[포숙]]이 실려 있으며, 중상과 중중에 [[묵자]], [[한비자]], [[손무]]와 같은 제자백가가, 중하에 [[진시황]], [[항우]]가, 그리고 최저 등급인 하하(혹은 우인愚人)에는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들이 실려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