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보그룹 (문단 편집) === 몰락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VN19972023-00_01041112.jpg|width=100%]]}}}|| || 한보철강 부도 뉴스가 보도된 [[1997년]] [[1월 23일]]자 [[MBC 뉴스데스크]][br][[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975449_30717.html|뉴스보기]][[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70200|부도 당일 KBS 뉴스 9 방송분]] || 그러나 철강 부문에 집착하게 된 게 직접적인 패착이 되고 말았다. 한보철강은 제철소를 지을 돈이 부족해서 회사채 발행, 차입, 어음발행, 매각 등으로 돈을 확보하려 시도했고, 은행들도 채무를 유예해 주거나 긴급지원을 하는 등 도와 주었으나 [[1996년]] 말에 결국 자금이 바닥났다. 이후 [[1997년]] [[1월 6일]]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450억 원을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다음 날 주식시장 폭락 등의 악재가 있었다. [[1월 9일]] 어음 1,200억 원이 들어와 위기를 맞았으나 은행권의 긴급 지원으로 위기를 넘겼다. [[1월 10일]]에는 자사 보유 3,100억 원짜리 부동산을 내놓았으나 쉽사리 팔리지 않았고, [[전환사채]] 350억 원을 발행하려 했으나 매각에 실패했다. [[1월 14일]] 임원진을 전면 교체하며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1월 17일 560억 원의 어음을 다시 은행권 추가지원으로 넘겼다. 이 와중에 한보철강이 짓던 당진제철소의 냉연/열연공장이 준공되며 잠시나마 상한가에 오르기도 했다. 1월 20일 3,000억 원 추가 지원을 은행권에 요청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1997년]] [[1월 23일]] 50억 원의 어음이 들어왔고, 은행권의 추가지원 난색 등으로 어음 결제를 못하자, 주식포기각서를 내며 도산했다. '''이때 [[한보철강]]이 졌던 빚만 5조 원이었다.'''[* 당시 한보그룹의 [[재계서열]]이 14위였는데, 2021년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총액기준으로 발표하는 기업집단 서열에서 13위가 [[CJ그룹]], 근소한 차이로 14위가 [[한진그룹]], 15위가 [[두산그룹]]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47372#home|#]] 지금으로 치면 CJ or 한진(대한항공) or 두산이 수십조 원대의 부도를 내고 공중 분해된 것이다. 당연히 경제가 멀쩡할 리가... 중요한 건 이 기업 하나만 빚이 많아서, 욕심이 과해서, 재무건전성이 안 좋아서였다면 국가부도까진 안 갔을 것이다. 한보는 당시 빚으로 기업을 키우는 한국경제에 경종을 울리고 무너진 셈이다. ~~[[STX|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역사는]] [[동양그룹|반복된다]]~~ 사실 IMF 구제 금융사태 이전까지 한국 대기업들은 "빚도 재산이다. 기업 사정이 어려울수록 더욱 공격적으로 경영에 나서야 한다. 그러니 빚을 졌다면, 더 많이 빌려라!"는 식의 극도로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었기에 이런 사정이 결코 한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보보다 더 규모가 컸던 김우중 전 회장의 대우그룹은 빚을 지면 빨리 갚기보다 오히려 더 많이 빌려 빚 규모를 더 키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제철소 건설이 직격타가 되긴 했지만, 멀리 보면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수서 사건]] 때부터 망할 조짐이 보였다. 당시 한보그룹은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수서 사건]]으로 닥친 그룹 내 위기를 모면하고자 기존 건설재벌에서 종합 재벌로 거듭나기 시작했는데, 이때 무리하여 계열사를 만들고(한보선물, 한보관광 등) 인수를 강행한 데다(상아제약, 세양선박, 유원건설 등), 거기에 제철소 건설 사업에 돈이 매우 많이 들어가면서 적자가 나자 회사채 남발과 차입, 어음, 부동산 매각 등으로 메꾸면서 이를 충당했다. 그러나 결국 벌린 사업들이 실패하면서 경영이 악화되고, 제철소 건설이 그야말로 [[물먹는 하마|돈 먹는 하마]] 급이다보니 최종적으로는 자금이 바닥나며 은행권의 지원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까지 갔던 것. 심지어 알짜가 될 거라 장담했던 한보에너지의 가스전 개발권마저 팔았다. 뭐 당시엔 유류가 상승이 오기 이전이라 가스전이 크게 수익이 나진 않았다만 어쨌든 미래를 파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 말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는 것이기도 했다. 부도 직전인 [[1996년]]에는 유원건설의 사명을 한보건설로 바꾸고 그간 전문이었던 주택건설 부문에 다시 뛰어들어 경영난을 타개하고자 노력했으나 이마저도 실패, 결국 [[1997년]] [[1월 23일]] [[한보 사태]][* 이 사건은 [[김현철(1959)|김현철]] 스캔들로도 이어졌다.]라는 추악한 결말을 냈고, 4월 1일에는 대규모기업집단에서도 제외된 후 서서히 공중분해됐다. 이를 신호탄으로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던 다수의 재벌 그룹들이 연쇄 부도를 맞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1997년 외환 위기]]라는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