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보그룹 (문단 편집) === 창업과 전성기 === [youtube(CMRApnLDtyE)] 부도가 나기 직전 [[1996년]] 마지막 광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서 세무공무원으로 일했던 [[정태수]]가 일하기에 싫증이 나던 차에, 역술가의 말을 듣고 준비 과정을 거쳐 공무원을 그만두고 [[1974년]]에 창업한 한보상사가 모체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에 한두 달치 봉급 정도의 돈으로 폐광을 인수했는데 [[미국]]에서 [[몰리브데넘]]의 생산을 중단하자 떼돈을 벌어들였고, 1975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구로동]][* 1980년에 구로동 일원이 [[구로구]]로 분구.]에 영화아파트[* 현재는 구로지웰아파트로 재건축되었다.] 172가구를 지으면서 주택건설업에도 진출했다. 1976년 삼아건설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강남 개발에 진출했고, 1979년 초석건설을 인수해 해외 건설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물론 순탄한 길을 걸어왔던 건 아니라서, 건설 도중 규제조치가 걸려 기껏 지은 아파트가 미분양 상태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한 번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오일 쇼크#s-3|2차 오일쇼크]]가 와서 화폐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던 덕택에 [[대치 은마아파트|은마아파트]]가 단 20일 만에 완판되며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고 일약 재벌로 성장하게 된다. 1981년 그룹총괄비서실을 신설해서 기업집단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고 1982년 한보탄좌개발을 세워 탄광사업에도 진출했고, 1985년에는 [[금호산업|(주)금호]] 철강사업부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런 게 시대를 잘 타서 대박을 쳤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그룹이 조금씩 삐그덕거리며 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이 취약해지자 타개책으로 이런저런 로비를 했다. 그 시도는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1991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을 일으킨 후 공중분해의 위기가 닥쳤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노태우]] 정권의 비호로 여차여차 넘어갔지만, 주력이던 주택 부문에서 손을 떼어야 했고 정태수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도리어 이 시기가 새로운 기회가 되어 1993년 정태수가 총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 기존 건설 치중에만 벗어나 상아제약을 인수했고, 시베리아 가스전을 확보/개발하고 철강사업에 집중하거나, 영상 프로덕션 '한맥유니온' 등을 세우며 사업 다각화를 꾀하게 된다. 1995년 부실 건설업체 유원건설과 계열사 4개를 세트로 인수하여 주택 부문에 재진출을 선언했으나, 그해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져 정태수 총회장이 구속되어 3남 정보근 부회장이 회장으로 등극하면서 2세 경영체제로 승계됐다. 일단 당시 주요 사업이었던 러시아 가스전 개발과 [[제철소]] 건설은 당시로는 현명한 결정이었다. 가스전 개발의 경우, 확실히 시대를 앞서가는 발상이었는데 에너지 확보가 크게 중시되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당시 유가든 천연가스 값이든 간에 고점에 비해서 60%대로 떨어져 있었던 시절이었고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더 낮은 수준이었다보니 굳이 비싼 돈을 쓰면서까지 자원 개발에 나설 이유가 적었기는 했다.] 당시 앞으로 에너지가 미래가 될 것이라는 [[정태수]] 회장의 선견지명에 따른 결정이었으며 그 선견지명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맞았다.]][* 당시 이미 [[고합그룹]](고려합섬)도 '북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해당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두 기업의 천연가스 개발이 현실화되었다면 한국의 에너지 부족 문제는 완화될 수 있었겠으나, 둘 다 부실경영 문제로 97년 부도크리를 맞고 만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 천연가스관 건설 논의 등 말이 조금 있었다가, 문재인 정부에서야 구상되기 시작했다. 다만 현실화되었다면 에너지주권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러시아가 [[잠가라 밸브]] 시전해서 유럽에 횡포를 부리는 게 한국에서도 통했을 것이라는 지적.] 또한 철강사업의 경우 국내 메이저급 철강 기업이 [[포스코|포항제철]] 하나뿐인 상황에서, 어느 정도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고 내수 독점 견제를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내 대형 철강 기업이 하나쯤 필요하긴 했다.[* [[현대자동차|자동차 조립]], [[현대모비스|자동차 부품 생산]], [[현대중공업|선박 건조]], [[현대건설|토목/건축물 시공]] 등 국내에서 철강 수요 사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현대그룹]]이 1980년대부터 종합 제철소를 가지길 원했으나, [[포스코|포항제철]]의 견제와 여러 가지 여건이 안 좋아서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해서 그 꿈을 이루긴 했다.] 심지어 '친환경 철강소'를 만든다고 당대 미검증된 신종 공법 '코렉스' 도입을 시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