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한반도 (문단 편집) ==== 남부지방 ==== 전통적으로 [[충청도]](호서), [[전라도]](호남), [[경상도]](영남) 지방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 혹은 하삼도(下三道)라고 불렀다.[* 과거에는 [[제주도]]가 [[전라도]]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한반도의 정의에 따라 한반도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본토의 행정구역은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충청북도]], [[충청남도]]로 나뉘고 본토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부속도서의 행정구역으로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있는데 이러한 지리적 특징 덕분에 제주지방은 같은 남부지방이여도 사회, 문화, 정치, 역사, 자연 등 여러 분야에서 사실상 다른 권역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인 특징을 보인다. 대체로 북위 37° 이남에 해당한다. 해양 및 열대성 기단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지라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온대기후가 주를 이루는 곳이다. [[냉대기후]]는 [[충청북도]], 그리고 [[경상북도]]의 일부 산악 지역 등 매우 한정적인 곳에서만 나타난다. 남북분단과 산업·교통의 발달 등으로 수도권과 충청권의 연계가 밀접해진 오늘날에는 북한 치하인 [[황해도]]와 [[미수복 경기도]], [[미수복 강원도]]까지 통째로 북부지방 취급하고 대신 충청도를 중부지방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강해졌다. 사실 서울에서 충청도의 거리는 서울에서 황해도의 거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어서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중부와 가까운 곳이 충청도다.[* 게다가 기호지방이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 경기도와 충청도는 역사적으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두 곳 모두 마한의 일원이자 백제의 오랜 중심지였다는 역사도 있고 고려시대에는 같이 양광도로 묶여 동일한 행정구역에 속했으며 조선시대에도 같은 기호 지방으로 묶이고 이곳에서 태동한 기호학파는 영남학파와 함께 조선 정계를 주름잡았다. 반면 황해도는 지역적으로는 중부지방이라지만 경기도보다는 평안도에 더 가까운 혹독한 기후, 고조선과 한사군 소속의 역사, 고구려의 중심지이자 고려의 배후지, 서북 지역 차별(당장 조선시대 인물 보면 죄다 한양이나 경기, 삼남지방 출신이지 이북지역 출신 찾기도 힘들다.) 등의 이유로 [[경기도]]보단 [[평안도]]와 공감대가 크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에는 [[남북분단]]이 결정적이지만 말이다.] [[충청도 사투리]] 또한 일부 어휘(~유, ~여/겨)를 제외하면 경기도와 차이가 많이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서울 북쪽이 [[군사분계선|휴전선]]으로 가로막히고 수도권이 한계에 다다른 현재는 수도권 개발규제의 혜택을 [[충청도]]가 집중적으로 맞고 있어, 중부 문화권에 사실상 종속된 상황이다. 지리적으로 북부, 중부와는 기후가 상당히 달라서, 충청 이남과 수도권 이북은 큰 차이를 보일 때가 많다. [[경상도]] 상당수 지역과 호남 남해안은 눈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이고[* 다만 호남 서해안 지역은 대표적인 다설지이다.], 여름에는 거의 매년 태풍과 수해, 폭염 피해를 심하게 입는다. 그러나 가뭄 피해는 적은 편이어서, 중부와 북부에서는 한 번 시작되면 농사를 포기할 정도로 심각해지는 가뭄은 남부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하여 옛부터 [[서울]] 사람이 [[평양]]에 내려가면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부산]] 사람이 서울에 올라가면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한반도 지역에선 '''오로지 남부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 상당히 많다!''' 가령 한민족이 무척 좋아하는 [[감나무]]만 해도 충청 이남에서만 자라고, [[대나무]]를 비롯해 [[포도]], [[복숭아]][* 이 둘은 [[해주시]] 인근까지 자라기도 하지만, 중부지방에선 매우 한정적인 영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고구마]], [[보리]], [[녹차]], [[감귤]] 등등 상당수의 작물들을 충청 이남에서만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지나치게 구시대적 교과서 농업에서나 할 법한 소리고 고구마 포도 감나무 복숭아 등 모두 강원도에서 잘만 재배한다. 남한에서 가장 추운 축인 강원도 평창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전통적인 남부지방의 특산물들이 북상했듯이 기존에 남부지방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작물들이 새로 들어오고 있다.] 가장 축복 받은 기후 덕택에 전근대 사회에서는 '''예부터 가장 부유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인구의 경우 '''북부와 만주로의 인구 이동이 심화된 일제강점기 말기에도 한반도 인구의 50%가 삼남지방에 몰려'''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옛 말이 되어버렸지만, 이는 도시화의 영향이지 농촌 인구에 한정하면 여전히 남부로 갈수록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호남평야를 낀 호남 지역이 가장 부유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고려부터 조선 후기까지 세수의 1/3 이상이 전라도 지역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강력한 수탈 대상이어서 일반 백성들은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는 하는데, 사실 조선의 세수는 그렇게 빡세진 않았다. 자세한 사항은 [[조선/오해#s-2.4]] 참조. [[판소리]]가 호남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로 곡창지대라 먹고살만하니 서민문화가 발전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뽑히고 있으니 강력한 수탈이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조선시대 수탈 이미지는 대체로 미디어에서 나왔거나 식민사관이 잘못퍼져서 생긴 편견에 가깝다.] [[충청도]]는 고려 시절에는 남경길지설의 덕을 받아 후기에 위상이 커진 양광도의 일원으로 속했고[* [[몽골]]의 침입을 막았다는 공로로 충주는 한동안 국원경으로 불리기도 했다. ~~[[충주]] 전성기.~~], 조선 시절에는 [[기호 지방]]의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수도권과 연관이 있었다. 또한 [[경상도]]는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고, 고려 시절에는 [[동경]]이라는 행정 구역이 있을 정도로 이전의 위상을 어느 정도 유지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동인 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학문적으로 위상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8도 중 인구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와 마찬가지로 [[전라도]]는 [[견훤]]의 [[후백제]]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쥔 적이 없다. 고려 시절에는 후백제의 근거지였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홀대받았으며, 조선 시대에도 이성계의 본향이었다는 점과 붕당 초기때에 학파를 형성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역사의 주역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옥저]]보다 훨씬 오래간 [[마한]]의 역사와 북부와 달리 단 한순간도 한국사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 [[후백제]] 36년사, [[조선왕조]] 본향, 그리고 압도적인 인구밀도와 높은 양반 비율, 그리고 곡창지대 등의 이유로 [[함경도]]나 [[황해도]], [[강원도]]보단 훨씬 취급이 좋다.] 그나마 곡창 지대라는 특성이 있었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리적 입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기후가 좋아서 작물 생산량도 많고 사람도 많이 사는 만큼 지역 토착 세력의 위세가 상당히 드센 곳이었고, 그를 바탕으로 지역 유지들이 중앙 정치에서 강한 입김을 많이 내뿜었다. 신라 때는 천 년 동안 수도가 경주였으므로 말할 필요가 없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정치는 중부지역에서 하지만 사실상 영남, 호남, 충청 지역의 유지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고려 초중기 서경, 서해도 세력과, 조선 후기 경기출신이 장악하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남부지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오랫동안 불피웠고 이는 대한민국이 들어선 지금도 마찬가지. 초대 대통령([[이승만]]), 임시 대통령([[최규하]]), 현 대통령([[윤석열]])을 뺀 모든 대통령이 삼남 출신임을 생각하면 수도만 중부지역에 세워놓고 남쪽 사람들이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건 여전하다. 물론 그런 현상이 지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6년 기준 수도권의 인구가 '''전체 한국 인구의 절반을 넘고''' 소위 [[SKY(대학교)|SKY]]와 인서울로 대표되는 교육적 환경, 정치적 환경 모두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신 수도권 출신보다 지역구에서 유리할 가능성은 높다.[* 수도권의 역대 선출직 중에는 지방 출신도 많다. 하지만 각 지방의 선출직은 해당 지역구나 그 이웃, 넓게 보면 소속 광역권(도 단위)으로 사실상 한정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경제적 비중은 그 이상이라 요즘은 빛이 많이 바랜 감이 있다. 전라권과 경상권이 서로 상반되어 충돌하고 충청권은 가운데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충청권은 [[김종필]]과 [[자민련]]을 밀어줬었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역풍으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민련이 충남에서만 4석, 충북에서는 0석으로 떡실신당하고 비례대표 '''1번'''으로 나왔던 김종필 역시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사실 자민련에서 지역구 1석만 더 차지했어도 김종필이 10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종필이라는 거대한 구심점을 잃은 자민련은 해체에 이르게 된다.[* 사실 [[김종필]] 정도의 거물이 비례대표 1번에 나온 것부터가 굴욕이다. 보통 이런 거물들은 비례대표 표 결집을 위해 당선 라인 중간이나 끝부분에 비례대표 번호를 집어넣는다. 일례로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경우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9744|당선이 불분명한]] 순번을 받아 비례대표 표를 결집시켜 당선된 경우도 있었고,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쇄신 분위기를 내게 된 결정적 원인인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선관위 공격 사건|선관위 공격사건]]과 정권 말기 여당 심판론 등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패배가 예상되었을 때 박근혜 대통령도 당시 비례대표 11번을 받아 선거에 나섰었다. 그런데도 김종필이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 것은 그만큼 위기 의식이 컸다는 이야기다.] 이후 충청권 특히 [[충청북도]]는 완전히 선거의 캐스팅보트가 되었다. 주요 도시로는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울산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청주시]], [[천안시]], [[구미시]], [[포항시]], [[창원시]], [[진주시]], [[김해시]], [[전주시]], [[익산시]], [[목포시]], [[순천시]], [[여수시]], [[제주시]] 등이 있다. 전통 도시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지만 정작 천 년이 넘게 지역 중심지였던 다수의 도시들(예를 들면 김천, 경주, 상주, 진주, 안동, 공주, 충주, 홍주[* [[홍성군]]], 전주, 나주, 남원 등)은 몰락하고 동남부 해안과 경부축을 중심으로 도시 분포가 상당히 바뀐 상황이다. 같은 지방이라도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한 지역 중 하나로서, 남동임해공업단지가 몰린 경상도 해안지역과 수도권 규제의 혜택을 입은 충청도 북서부, 경부선 인근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반면 경북 북부 일대와 호남 쪽은 도시 풍경이 1980~90년대에서 멈춘 곳이 상당히 많을 정도로 상당히 낙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